파리의 포도주
마르셀 에메 지음, 최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프랑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파리이고, 싸르트르, 에펠탑, 포도주, 패션 등등이 그 뒤를 잇는다. 파리는 여행하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로, 못생기고 성격까지 괴팍한 싸르트르는 때때로 방문해야하는 까탈스러운 지인으로, 패션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포도주가 나와는 좀 친한 편이긴 하다만 나는 이상하게 값이 싼 불가리아나 칠레산 포도주가 좀더 입맛에 맞는것 같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파리의 포도주』는 얼마전 읽었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로맹가리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로맹가리가 좀 지적이고 고급스런 감각이라면 마르셀 에메는 그를 수식하는 '국민작가'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박하고 대중적인 느낌을 준다.
 
『파리의 포도주』에 실려있는 8편의 단편중 <좋은 그림>, <가짜 형사>, <당통>, <파리의 포도주>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그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얽힌 이야기다. 그의 그림은 화상으로부터 "창조의 본질이 무르녹아 있는 신비의 결정체" "物과 生의 진정한 다리"라는 극찬을 받는다. 찬사와 비난은 늘 양립하는 법이어서 화가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또다른 화가는 그의 그림을 두고 "평생 그림을 손가락 운동으로 아는 머저리"라고 개탄하면서 그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치부해버린다.  반전을 거듭하는 <좋은 그림>은 주인공 이름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중에 의미보다 어감을 중시한 작자의 의도를 고려해 익살스러운 우리말로 옮겨준 번역자의 수고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가짜 형사>는 질기고 튼튼한 양심을 가졌으나 세아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짜 형사>노릇을 해야했던 마르탱에 관한 얘기.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밥먹듯 한다. 이런 마르탱이 등쳐먹기 위해 찾아갔던 한 '지조 없는 여자'를 보는 순간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 그는 자신이 여자를 찾아간 목적도 잊고 미심쩍어 하는 여자에게 자신은 <가짜 형사>라는 영화를 찍는 배우라고 소개한다. 전쟁 직후의 피팍한 삶이, 사랑이 마르탱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궁금하신분,  읽어보시라.
 
오르골 소리를 듣기 위해 세 노인을 살해하고 감옥에 갇힌 <당통>, 항소는 기각되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당통의 교수형이 예정되어있다. 감옥으로 죄인을 찾아온 신부는 영혼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만큼 착한 당통의 심성을 발견한다.  신부는 신의 아들이 어떻게 마굿간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지 얘기해주고는 "알겠나? 당통군 그것은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해 오셨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일세. 말하자면 감옥 안에서, 즉 가장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셨을 수도 있었던 거야." 라고 덧붙인다. 신부의 말은 교수대에서 증명된다.
 
포도주에 혐오감을 가진 남자와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 프랑스에서 이 두 부류의 남자는 모두 죄인이다. 포도주를 혐오하는 남자는 마치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공기를 싫다고 하는 것보다 더 천벌이고 자연의 기현상이다. 반면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는 포도주가 나오는 분수를 꿈꾸고 서랍장의 모서리에 부딪힌 장인의 대머리에서 나오는 피까지 포도주로 본다. 장인의 대머리를 포도주병으로 보기 시작한 포도주에 환장한 남자는 병따개를 들고 장인의 주위를 맴돈다. 병따개가 병을 따기에 턱없이 작다는걸 알게된 그가 어떻게 인간 포도주병을 따는지.......
 
마르셀 에메의 단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르셀 에메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범죄를 일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람을 죽이는 일에까지도 아무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그려간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예술을 보기만해도 배가 불러지는 '좋은 그림'으로 명명한 마르셀 에메의 상상력앞에서 사람들은  암담한 현실을 위로받거나 잠시 잊었을 수도 있었을 것같다. 마르셀 에메의 작품을 읽는 동안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대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하면서 내 딱딱한 해골이 잠시 녹녹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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