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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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는 영화 <닥터 지바고>, <해바라기>를 통해 남아있는 몇개의 이미지가 고작이다.
지도상에서 볼때 엄청 넓은 땅덩어리를 보며 징키스칸이 내달렸던 환상을 떠올리는것도 하나의 이미지로 첨부된다.

러시아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뻬쩨르부르그-표기가 어느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볼쇼이 합창단, 짜르, 눈, 크레믈린 궁전 등 이미지도 없는 몇개의 어휘가 전부이고, 언젠가 영국인 친구에게 '러시아'라는 발음을 아무리해도 못알아 듣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러시아'보다 '러샤'에 더 가깝게 발음해야하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작품을 읽는 것은 솔직히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롤랑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를 읽었을때 내가 프랑스 문화를 알면 훨씬 더 재미있을거라는 생각과 함께 기필코 불어를 배우고야 말겠다는 넘치는 의지로 충만했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의지는 물론 며칠 못갔고 대신 프랑스를 제집 드나들듯 하는 친구를 하나 만들어두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이번에도 역시 러시아에 대한 기본지식이 너무 없다는 생각 특히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어야 고골의 작품이 훨씬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니꼴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까자크 전통이 살아 숨쉬는 우크라이나의 소로친치에서 태어났고 고골례보에서 자랐다. 우크라이나는 한때 폴란드의 식민지였고 12세기 초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았으며 징키스칸의 손자 바투의 주거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는 <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등 5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고골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찰관>, 러시아판 신곡이라 불리는 <죽은 혼> 등은 다른 책에 실려있는 모양이다.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는 서방진출을 위해 계획도시인 뻬쩨르부르그를 세웠고 관료제를 정비했다. 러시아의 관료는 모두 14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고골의 작품은 이 관료들을 비판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만년 9등관인 아까끼 아까끼에비치 바쉬마취킨이 어렵게 장만한 외투를 잃어버리고 죽어 귀신이 된다는 이야기의 <외투>, 어느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코가 사라진 것을 알게된 8급관리 쿄발료프의 이야기 <코> 등을 통해 고골은 교묘하고도 노골적으로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함을 비판하고 있다.

10월 3일의 첫일기로 시작되는 <광인일기>는 12월 8일의 일기까지는 나름대로 시간의 순서를 지키던 날짜가 갑자기 '2000년 4월 43일, 30월 86일 낮과 밤 사이, 며칠도 아니다. 날짜가 없는 날,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 달도 없다. 왜그런지 알 수 없다.' 등 주인공의 정신병리학적 상태를 반영하며 전개되어간다. <광인일기>는 에는 당시의 주변국가들의 정치적 상황들이 언급되고 있다. 짜르 체제하에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가 나름대로의 방책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초상화>는 한 예술가가 가난에 못견뎌 세속적 욕망과 결탁한후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진정한 예술은 무엇이며 타락한 영혼은 종교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고골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어느 시대에나 참다운 예술가의 적은 늘 물질적 욕망이었다. 현대의 이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 예술가의 진정한 적은 무엇일까?

표도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도시 뻬쩨르부르그에는 네프스끼라는 거리가 있다. <네프스끼 거리>는 마치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처럼 네프스끼 거리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 거리는 시간마다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 붐빈다. 갓 구워낸 빵냄새가 가득찬 아침의 거리에는 남루한 노파와 거지들로 가득차고 12시까지의 거리는 그저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로 활용된다. 또 오후 두시부터 세시까지의 네프스끼 거리는 인간박람회가 열리는 시간이다. 이 거리는 황혼이 깃들면 새로운 활기를 띄게 되는데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삐로고프 중위와 화가 삐스까료프의 이야기이다. 고골은 이 두 주인공의 허황된 욕망을 통해 네프스끼 거리를 영혼 부재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계획도시로서의 뻬쩨르부르그와 이 도시의 대표적인 네프스끼 거리는 유럽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으로서 물질적, 성적 욕망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범속한 거리로 묘사되고 있다.

어쨌거나 고골의 작품들은 리얼리티를 확보하면서도 인과관계를 무시한 다분히 환상적인 요소들이 소설 전편에 배어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작가가 이야기 중간에 뛰어들어 뜬금없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었다.
<외투>에서 재봉사의 인물묘사를 하다가 '하기는 이런 재봉사 얘기를 길게 늘어놓을 것까진 없을 것도 같지만, 소설에는 어떤 인물의 성격이건 빠짐없이 묘사해야 한다는 게 이제는 통례로 되어 있으니 부득이 페트로비치에 대하여 좀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고 뜬금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코>에서는 아예 소설의 마지막 한 쪽의 전부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객담은 재미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문득 빠져나와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또 이런 황당무계한 소설을 쓰기는 하지만 작가자신은 이 모든 것을 너무나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고골은 <죽은 혼>의 인물창조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생을 마쳤다고 한다. 문득 글은 그 사람과 운명을 함께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골을 읽으면서 작품을 읽는 시간보다 지도를 들여다보는 시간, 러시아 역사를 훑어보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이 작품들을 계기로 러시아 문학에서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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