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가 도대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표지 안쪽에 있는 짧막한 소개글에서 그의 학력과 경력을 간단한게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1998년  <화가 이중섭>론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미술 평론가로 데뷔하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또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네이버 검색창에 '전인권'을 쳤다. 그랬더니 1년정도의 분량을 뒤진 후에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전인권' 검색어는 "인권이 라이프~"를 외치던 가수 전인권만 미친듯이 불러내고 있었다.  산발한 그의 모습을 꿈에 나타날까 두려워하게 될만큼 지겹도록 보았다. 99.8%이상이 가수 전인권이었고 나머지0.02%는 어처구니 없게도 토막난 말 '전 인권(위원장)'의 전 인권이었다. 어렵게 한겨레 뉴스에 실린 그의 사진과  소개글을 만날 수 있었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2년전 암으로 작고했다는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를 토대로 한국의 남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해부하고 있다. 가정 내에는 물리적 정신적으로 분리되어있는 어머니의 공간과 어버지의 공간이 있다. 작가는 이런 공간에서 자라나면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습득해온 여성과 남성의 세계, 모성과 부성, 맹목적 사랑과 권위 의식 등을 용의주도하게 파헤쳐서, 그것이 한 아이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내고 있다. 그는 이런 환경속에서 태어난 한국사회의 남성을 '동굴 속 황제'로 명명한다. '동굴 속 황제'는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말하는 '동굴의 우상'에서 따온 말이다. 베이컨은 <신기관>이라는 저서에서 네가지 우상론을 정리하는데 그중 하나가 '동굴의 우상'이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이 갖기 쉬운 우상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갖게 되는 우상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의 우상론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향한 절규다.  대학 교수처럼 지식이 많은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세계의 명저를 읽으면, 지혜가 넓어져야하는데  오히려 이런 곳에서 '동굴의 우상'이 생겨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을 더듬어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이 만든 동굴의 우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선하며 훌륭한 사람이라는 우상, 특별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우상, 이 세상은 내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져야 한다는 우상 등이다. 그는 이 동굴 속에서 황제로 자라나 이제 동굴 속 황제를 분석하고 있다. 동굴 속 황제는 허영심도 있어서 그저 남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선미의 화신' 이라고 생각하며 이 사실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주지시키려한다. 또 자신의 심리적 영토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넓히려 하는 특징도 있다.  이런 특징을 감안해보면 스스로가 진선미의 화신인 것처럼 행동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면서 자기 주장을 집요하게 펼치는 사람은 대부분 동굴 속 황제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신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신분적 인간일 확률이 높다.

저자는 글의 첫머리에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동굴 속 황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될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단체인 가정에서 만들어진 '동굴 속 황제'는 보다 큰 사회인 학교, 군대, 직장 등을 경험하면서 연쇄적이고도 중층적인 권위구조 속에서 성장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라난 '동굴 속 황제'들에게 둘러 쌓여 살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 나도 저자가 말하는 '동굴 속 황제'와 동거하고 있다. 동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래 함께 살다보니  나름대로의 처방도 생겨난다. 시쳇말로 '쌩까'거나 극약처방이 동거의 비결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동굴 속 황제가 반드시 남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듯 하다. 내게도 동굴 속 황제의 징후들은 농후하지 않은가.

이 책의 표지는 독특하다. 책 표지에는 6혹은 8포인트 정도 크기의 글자들이 절반정도를 포진하고 있다. 나는 이 글자들이 어떤 형상을 나타내는지 모르는 채로 책을 읽었고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이미지를 삽입하려다가 저자의 얼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책읽는 이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의 의도대로 놀아났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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