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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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위험요인의 하나로 사랑을 든다.  사랑을 현대사회의 위험요소로 진단하는 것은 어쩌면 형용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책에서 환경호르몬, 질병, 건물 붕괴, 가스폭발, 핵폐기물 등보다도 사랑이 더 위험요인이라는 그의 진단은 설득력을 지닌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포괄적이고 얼마나 많은 층위를 갖는지를 알기란 불가능한 일인듯 싶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은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난용종 암탉이다. 알을 품고 병아리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이 잎싹의 소망이다. 그러나 잎싹은 알을 품기는 커녕 발끝으로 만져볼 수 조차 없다. 이런 잎싹이 덤불 속의 알을 품고 부화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과는 생김새도, 울음소리도, 생활습관도 다른 청둥오리의 새끼이다. 마당의 닭과 오리의 무리에게서 외면당하고 굶주린 족제비로 부터 새끼(초록머리)와 자신을 지키려는 잎싹의 삶은 고달프다. 새끼가 점점 자라면서 자신과는 다른 청둥오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잎싹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작가는 잎싹의 입을 빌려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건 아니란다. 중요한건 서로를 이해 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라는 사랑관을 펼친다. 겨울을 나고 이동하는 청둥오리의 무리를 따라 이동해가는 초록머리와 이별하고, 새끼를 낳아 굶주린 족제비의 먹이가 되는 잎싹. 알을 품어보고 새끼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꿈이었던 잎싹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 알이 닭의 알이 아니라 청둥오리의 알이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잎싹의 사랑은 단순한 종족 보존의 본능을 넘는 효과를 낸다. 잎싹의 사랑이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사랑이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마당에 있는 닭의 우두머리인 수탉은 권위주의의 상징처럼 읽힌다. 병아리 여섯 마리를 거느린 암탉이 중시하는 질서 역시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청둥오리를 자신과 한 족속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무리로 끌어오려는 오리 우두머리의 주장 또한 울리히 벡이 주장하는 현대 사회의 위험요인인 사랑의 한 방식이다. 타자의 사랑을 보면서 왈가왈부하는 나는 과연 제대로 사랑을 해보기나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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