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리히터가 편곡한 비발디 사계(Max Richter - Recomposed: Vivaldi, The Four Seasons)>를 처음 알게 된 것은 DG(도이치 그라모폰, 독일 축음기) 음반사에서 나온 컴필레이션 앨범 <100 바이올린 걸작> (100 VIOLIN MASTERWORKS)중 첫 CD에 수록된 12번째 곡 <봄 1악장>(Recomposed by Max Richter : Vivaldi, The Four Seasons : spring 1)을 듣고서였다.




<100 바이올린 걸작>(100 VIOLIN MASTERWORKS)는 바이올린 연주곡, 협주곡 중 유명한 100곡을 선정해서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이름값이 있어서인지 발매 후 클래식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나도 홀린듯이 샀다. 음반 북클릿에 기재된 수록곡 목록에는 쟁쟁한 클래식 음악가들, 비발디,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바이올린의 대가 파가니니 등이 있었다. 당시 막스 리히터는 모르는 음악가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고 비발디 <사계> 편곡이나 변주곡 또한 파헬벨의 <캐논>처럼 다양해서 크게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무심결에 음반을 청취하다가 순간 멍해졌다. 생소하지만 익숙한 느낌. 굉장히 활기차고 사람을 설레게하지만 한편으론 신비한 느낌을 주는 바이올린 선율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북클릿을 확인했다. 음악가 막스 리히터와 그의 <사계> 변주곡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사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안토니오 비발디의 곡이다.엄밀히 말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각 3악장의 독립된 협주곡으로 비발디 협주곡  No.1, No.2, No.3, No.4번을 일컫는다. 특히 <봄> 1악장은 알레그로(빠르게)속도로 빠르고 경쾌하게 봄의 생기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 영상은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 연주. 탐고로 클라라 주미 강은 우리나라 유명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로 <놀면 뭐하니?>에 나온 손열음 피아니스트와 협연도 자주 한다. 동문으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출처 : 유투브 채널 달빛소나타, 

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c51yiex2ie8


아래 영상은 막스 리히터의 편곡 버전 중 <봄> 1악장이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다니엘 호프일 것이다. 비발디의 원곡 1악장을 들으면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의 설레는 봄이 떠오른다.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한, 겨울잠에서 깨어나 만물이 약동하는 듯한 상쾌함을 준다. 막스 리히터의 편곡엔 거기에 생명의 신비를 더한 느낌이다. 경쾌하고 무겁지 않은 경외감,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아마 난 거기에 반한 거 같다.  



실제로 <사계>를 검색하면 비발디가 먼저 나오지만, 관련검색어로 막스 리히터, <막스 리히터가 편곡한 사계>가 많이 뜬다. 그만큼 유명했는데 왜 난 몰랐지. 늦게나마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출처 : Deutsche Grammophon, Recomposed by Max Richter - Vivaldi - The Four Seasons, 1. Spring (Official Video), 

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DLDvbnK_Sqk



아래는 전곡 연주 영상.



출처 : MaxRichterMusic, Max Richter - The Four Seasons: Recomposed Live at Le Poisson Rouge, NYC. 

주소 : https://www.youtube.com/watch?v=CJqRsuLbcL0&t=191s



ps. 솔직히 난 음악 전공자가 아니고 학창시절 음악 시간을 달가워하지도 않았다. 한창 일본 드라마가 인기를 끌던 시절 우에노 주리의 팬이었고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클래식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후로 그냥저냥 OST 위주로 찾아듣는 정도였는데, 삶에서 뜻하지 않게 힘든 일을 겪고 나서 클래식에 다시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백 년을 거쳐서 지금껏 연주되는 음악적 생명력과 불멸성을 생각하니 내 삶의 자잘한 문제들은 그 속에서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꼭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음악 리뷰를 쓸 수 있을까. 주관적이고 허술하고 깊은 소양은 없지만 나름대로 느낀 감상이나 추천 음반을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 아마 나같은 클래식 입문자나 즐기는 위주로 듣는 독자가 존재한다면 조금이나마 공감하지 않을까. 정말 음악에 소양이 있는 독자분이라면 이런 입문자를 무시하지 않고 음악의 기쁨을 더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면서 그냥 나는 나대로 음반 리뷰, 음악 리뷰를 시작하기로 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힘 빼고 써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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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2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히터라 해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인 줄 알았네요...

캐모마일 2020-08-29 17:12   좋아요 1 | URL
정말 역사적인 피아니스트라 먼저 그분을 떠올리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 같믑니다.
 
[4K 블루레이] 레옹 : 스카나보 풀슬립 (2disc: 4K UHD + 2D)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외 출연 / 노바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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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옛날 명작들이 4K UHD 블루레이로 재출시되는 추세인가 보다. 영화 <레옹>도 올해 5월 재출시되었다.



고독한 킬러와 학대당하던 소녀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감, 킬러가 순수해보이고 경찰이 악당같은 아이러니 등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느와르물이면서도 한편으론 따뜻하고 코믹하기도 한 영화. 삶이 주는 깊은 쓴맛과 찰나의 단맛, 그리고 그 맛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아련한 맛이 뒤섞여 있다.



뒷이야기에 따르면, 이 영화는 뤽 배송 감독의 차기작인 <제 5원소>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레옹>을 사랑하는 관객이 더 많다. 마틸다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가 흥행한 이후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 짐작하는 그런 류의 곤욕이 맞을 것이다. 나쁜 놈들.....



스팅이 부른 ost <Shape Of My Heart>는 여전히 사랑받는 주제가다. 킬러 레옹의 삶을 카드 게임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잘 표현했다. 멜로디 라인도 그렇지만 가사가 예술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정취, 트럼프 카드 네 종류의 모양과 그 어원을 언어유희로 승화한 부분은 몇 번씩 곱씹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특히 느와르 장르를 사랑했던 이에겐 더없이 와닿을 것이다.




출처 : 유투브 채널 "주란주란",https://www.youtube.com/watch?v=XMRqRvcb6hM


오른쪽 아래에 자막 버튼을 누르면 영어, 한글 가사가 나온다. 




He deals the cards as a meditation


그는 명상을 하듯이 카드를 돌린다. 


And those he plays never suspect


그는 의심없이 행동한다.


He doesn't play for the money he wins


He doesn't play for respect


돈을 벌기 위함도 아니고 존경받기 위함도 아니다.


He deals the cards to find the answer


그는 해답을 찾으려고 카드를 한다.


The sacred geometry of chance


신성한 확률의 기하학적 구조.


The hidden law of a probable outcome


그럴싸한 결과에 숨겨진 법칙.


The numbers lead the dance


숫자들은 골치 아프다.


(춤추게 한다라고 직역하기도 하지만 골치 아프게 하다라는 숙어적 표현이 맞는 거 같다.)




I know that the spades are the swords of a soldier


나는 스페이드가 군인의 칼이고,


I know that the clubs are weapons of war


클로버가 전쟁 무기이며,


I know that diamonds mean money for this art


다이아몬드가 이 예술의 판돈임을 안다.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하지만 그것들이 내 진심(마음의 모양)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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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8-2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애 영화죠^^ 주제가도 너무 좋고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17 세트 - 전17권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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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호란 씨의 본명은 최수진 씨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안타깝게 지금은 방송 출연이 뜸하지만,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활동명의 유래를 《천재 유교수의 생활》 이란 만화에 나오는 인물에서 따 왔다고 밝혔다. 실제 호란은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인데,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몽골 국적을 가진 당차고 멋진 여성이었다. 조국의 발전을 꿈꾸며 한 발 한 발 자기 삶을 걸어나갔던 경제학도 아니면 전공자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물론 주인공은 제목처럼 유 교수다. 본명은 유택. Y대 경제학과 원로교수다. 결벽증이 의심될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원칙주의자다. 저녁 9시에 취침하고 새벽 5시 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 지고 매일 출근길도 마찬가지로 마치 기계처럼 가던 길을 눈감고도 갈 수 있으며, 무단횡단이란 그의 삶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Y대 학생들은 대부분 이 깐깐한 노(老) 교수를 어려워한다. 만화는 이런 유 교수의 일상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개한다.





(유 교수의 얼굴.)



아시다시피 이런 원칙주의자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나 요지경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정어리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고, 같은 학교 학과에 재학중인 학부생 딸은 킹 오브 파이터즈 베니마루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하고 다니며 락 가수를 지망하는 씨씨 남자친구를 버젓이 집에 데리고 온다.



겉만 보면 유 교수는 꼰대의 극치를 달리는 캐릭터같고 에피소드도 달리 대단할 거 없는 작품 같지만, 특이하게 이 만화는 이른바 알 사람은 거의 아는 만화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놓고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높다. 가수 호란 씨처럼 감명 깊게 봤다는 유명인이 꽤 있고, 만화가들 서재에 빼꼼히 꽂혀 있는 모습을 은근 자주 볼 수 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만큼 인생작으로 언급은 잘 안 되나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알고 소장하는 신기한 작품이다.



이유가 뭘까. 사실 겉만 보면 꼰대 할아버지 교수같지만 알고 보면 매력남이라는 점이다. 정어리를 사기 위해 새치기를 하는 이웃처럼 무단횡단을 하거나 원칙을 어기는 사람들, 딸의 남자친구처럼 자기만의 개성과 소신을 가진 캠퍼스 괴짜 학생들과 사회 인물들, 유 교수를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는 손녀와 무심하고 깐깐한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는 아내와의 케미스트리. 때로는 자신과 너무 다르고 때로는 귀찮게 하는 인물들을 만나고 겪지만, 이 원칙주의자는 욕하고 비난하기보다 그들을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그 탐구심의 결론에는 인간에 대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만나는 다양한 인간상에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다. 앞서 설명한 호란도 한 예다. 한 에피소드에 비중 있게 나오지만 고정 캐릭터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수 최수진 씨는 호란을 활동명으로 정했을만큼 캐릭터에 빠졌다. 독자는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자신과 닮거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유 교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로 만난다. 때로는 인간의 천태만상을 보면서 풍자를 느끼고, 때로는 매료되고, 때로는 감동한다. 그리고 그 깐깐한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 길을 가는 원칙주의자 유택 교수에게 자연스럽게 팬이 된다.



지금 나는 한 유학생 에피소드가 기억에 떠오르는데, 독후감 리뷰를 쓰는 이유도 갑자기 그 에피소드가 떠올라서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고 밴드 활동에만 열심인 유학생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내막이 밝혀지길 분쟁지역에서 부모님이 반정부 민주화 인사로 낙인찍혀 숙청당하고 일본으로 온 난민이었다. 일면 날나리같은 그녀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유 교수와 몇 차례 면담 끝에 자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한다. 친부모와 친분이 있던 보호자와 주변인의 만류에도 부모님의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본국행을 택한다. 유 교수는 마지막으로 면담을 하고 당당히 캠퍼스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유 교수는 원칙주의자이자 테생적으로 타고난 탐구심 덩어리다. 하루하루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가면서도 하루하루 사람을 탐구하며 살아간다. 그에게 있어서 원칙과 소신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나, 순수하고 남다른 탐구심은 나와 남이 다름을 너무나 잘 깨우쳐 준다. 인간과 사회를 편견 없이, 진심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그는 따뜻한 원칙주의자가 되었다.



대체로 저 사람은 왜 저럴까?의 호기심은 단순히 그 인간이 틀렸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편하기 때문이다. 눈과 귀를 열고 살기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눈과 귀를 닫고 사는 태도는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다. 반면에 독자가 이 깐깐하고 집요한 원칙주의자 노(老) 교수에게 반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따뜻한 원칙을 발견한 덕분일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떨까. 지금은 어떻고 나이가 들면 또 어떻게 될까.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독자를 웃기고 울리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진다.



p.s 유 교수는 작가 야마시타 카즈미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실제 작가의 아버지는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였고 Y대는 아마 요코하마에서 따 온 이니셜이라는 게 정설인데, 마치 분위기는 우리나라 매스컴에서 접하는 교토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자유롭고 괴짜인 학생들이 많다. 무려 1988년부터 지금까지 연재중인 장수작이나 완결을 맺지 못한 채 우리나라 학산문화사 단행본 기준 34권에서 신간이 출간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완결판보다 애장판이 먼저 나와서 다소 욕을 먹긴 했다. 신간은 잘 안 나오고 완결은 언제될 지 모르는데 애장판이 나오니 조금 속상할 만하다. 하지만 독자가 애정하고 애장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인 점은 마찬가지다. 참고로 나는 종이 단행본 몇 권과 포인트를 모아서 이북으로 한 권씩 사서 큰 부담 없이 34권까지 전자책으로 소장하고 있지만, 이 애장판을 볼 떄마다 살까 말까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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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20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상하게 이 만화를 좋아하는 한명입니다. ^^ 열광적으로 좋아할 만화는 분명 아니나 은근히 자꾸 보고싶은 만화죠

캐모마일 2020-08-20 10:44   좋아요 0 | URL
와....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극적인 요소가 강한 편이 아니라서 대표적인 인생 만화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잊을 만하면 생각나고 곁에 두고 종종 읽고 싶은 작품입니다.
 
작은 아씨들 (영화 공식 원작 소설·오리지널 커버)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강미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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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영화로 개봉하고 고전 명작이라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책이 예쁘다고 하시며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게 한두 권 더 사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초판본 표지 특별판에 영화 스틸컷을 삽입하여 책이 아기자기합니다. 두꺼운 양장본임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점도 한 몫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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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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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는 일본호러대상 수상작이다. 솔직히 작년 이맘 때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마음에 꽂히는 작품이 있어 리뷰를 쓰려고 작정하지만, 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 넘어간다. 《야시》가 그 경우다.



책은 표제인 〈야시〉와 〈바람의 도시〉 두 중편이 수록돼 있다. 호러물보단 기담 형식에 가까운 작품으로 대체로 주인공이 요괴 마을 같은 다른 차원에 들어가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그린다. 그 이(異)세계는 저 먼 원더랜드가 아니라 가까운 동산이나 동네 어느 곳에 통로가 있고, 일상에 존재하는 평행 세상이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라는 부제가 딱 어울린다. 표제작보다 <바람의 도시>가 더 기괴하고 하드보일드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줄거리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서 감히 리뷰를 남겨 쓰는 나도 안타깝다. 다만 장마철 무더위에 호러 소설, 혹은 일본식 기담을 찾는 독자에게 무턱대고라도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장르성에만 집중하거나 자극적인 고어물이 아니면서도 독자를 끌어들이는 미스터리한 매력이 있다. 기묘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사건들에 오히려 현실의 삶과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엿볼 수 있어서인지 공포감이나 쾌감 이상의 떨림과 여운을 느꼈다. 단순히 장르소설로만 치부하기엔 아까운 작품이라 무성의하게나마 리뷰를 남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고 제대로 서평을 남기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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