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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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시작한 건 꽤 오래됐지만 진지하게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화, 목, 토 요일을 정해놓고 계획한 시간 또는 거리만큼 달린다. 화, 목은 주로 인터벌 달리기를 하고 토요일은 중거리 연습이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그냥 20, 25, 30분 시간을 정해놓고 내키는 대로 달리고 있다.


음악은 주로 락을 듣는다. 항상 똑같은 건 아닌데, 첫 곡은 웬만하면 반 헤일런의 <Jump>로 시작한다. 빰, 빰, 빰, 빠바 빠밤 빠바바~ 하는 키보드 소리에 발가락 끝에서부터 청량감이 몰려온다. 다음으로 니켈백의 <Burn It to the Ground>가 이어폰을 울리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자신감이 솟으며 나도 모르게 두 발에 힘이 실린다. 록키 O.S.T의 <Going The Distance>와 <Gonna Fly Now>는 풀 죽은 페이스를 살리는데 더할 나위 없는 치료약이다. 레이스 종반에 이 노래가 들리면 아무리 힘들고 진이 빠져도 반짝, 다시 살아난다. 처음엔 킬로미터당 6분이 넘는 속도로 달려도 한 바퀴가 멀고 먼 꿈의 나라 같았지만 지금은 5분 20초대로 6km를 달려도 가뿐하다. 최고 기록은 킬로미터당 5분 6초다.


달리기가 좋은 점은 운동복과 신발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만들어진 트랙이나 강변도로가 최고지만 인파가 쏟아지는 길이 아닌 이상 어디서라도 달리기는 가능하다. 이런 걸로 따지면 걷기가 최고 아닌가?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뭐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둘을 대체 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달리기 전 충분한 스트레칭이 되어 있고 적당량의 과당까지 섭취해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에서 초반 페이스 조절까지 완벽해 3km쯤에서 맞이하는 러너스 하이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대로 달리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걷기로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이런 느낌을 받기 어렵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서였던가, 어느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최고의 연주가 나올 때면 종종 '제발 나를 총으로 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다.


하루키 책 리뷰에 온통 내 얘기만 늘어놓으니 좀 미안하다. 게다가 이건 뭐 올림픽 마라톤 영웅이나 세계적 기록을 보유한 달리기 선수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기니 같잖아도 좀 이해해 주시길. 하루키도 이 책에서 비슷한 고백을 한다. 사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그나 나나 달리기로 밥을 먹고사는 전문 러너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꾸준히 하다 보면 결과를 막론하고 나름의 철학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이 수필에서 그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 애독자라면 머나먼 바다 건너에 사는 이 소설가와 보이지 않는 한줄기 끈이 연결됐음을 느낄 것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언제까지 달릴 것이냐 하면 글쎄, 솔직히 별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은 킬로미터당 4분대의 속도로 10km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언제까지 달성할 건지,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지,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해 놓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달리기처럼 대단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에는 엄청난 목적이 있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루키는 종종 '달리기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순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당신도 달려보기 바란다.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길.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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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 배움의 모든 것을 해부하다
스타니슬라스 드앤 지음, 엄성수 옮김 / 로크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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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배움 아닐까? 현세 인류를 특이점에 데려다줬다고 평가받는 인공지능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 덕분이었다. 인간의 뇌를 본떠 배움의 기본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오랜 시간 인간의 뇌가 완벽한 백지, 일명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했다. 뇌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수 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시간은 배우는 법이라는 궁극의 로직을 인간의 뇌신경에 새겨 넣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몰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갓난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부모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을 안아 드는 여자를 바라보며 마법의 단어 '엄마'를 내뱉는다. 그건 엄마가 수없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엄마라고 외쳤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이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동시에 나온 소리가 그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간단한 배움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이 무언가를 가리켰을 때 그 대상이 아닌 손 자체를 바라본다. 이는 강아지의 지능을 테스트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외에도 인간의 뇌는 관성, 중력 같은 물리 법칙에서 심지어 확률처럼 복잡한 개념까지 이미 알고 있다. 배움의 가장 위대한 점은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일반 법칙을 추론해내는 것인데, 이 추상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동안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 죽는 그 순간까지 바보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손에 쥐고 있던 물체를 놔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면 아이는 어떤 형체 또는 무게를 가진 사물은 전부 중력에 의해 밑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중력이라는 건 모르지만 어떤 힘의 존재를 추론해내어 그것을 전체 사물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법칙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컵도 땅에 떨어지고, 연필도 떨어지고, 사과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개개의 사물 별로 모두 배워야만 한다. 이는 오늘날의 기계학습이 가진 취약점이기도 하다. 단순히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 기계에게 제공해야 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미지의 양을 떠올려보자. 기계는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배움의 법칙을 모사했고 오늘날 강화 학습과 같은 수많은 기계 학습법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합종연횡 중이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는 이렇듯 배움 그 자체를 해부하는 책이다. 단순히 뇌과학 얘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도 곁들여 이쪽 개념을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머신러닝 개론서보다는 이쪽을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고 있는 사람 혹은 아이를 낳아 기를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알다시피 어떤 배움은 특정 나이를 벗어나기 전에 익히지 못하면 평생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뇌가 어느 시기에 어떤 가소성을 가지는지 안다면 이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최신 뇌과학 교육을 의무화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며 유용함이라는 측면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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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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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의 일을 돕던 타락한 변호사가 파탄을 맞은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명상을 배운다. 일에만 몰두하는 남자. 24시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 변호사에게 아내가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될 것을 요구하며 명상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온갖 사치품을 사들이는 아내의 뻔뻔한 요구가 혐오스러웠지만 일단은 듣기로 한다. 부부 생활은 마음속 말을 천만 번 고민하다 꼬깃꼬깃 구겨 밑바닥 깊숙이 쑤셔 넣는 게 진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첫 수업부터 지각을 했다. 애초에 강제성이 있었던 터라 그딴 게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상 선생님은 이 회의적이고 까칠한 변호사보다 몇 배는 기가 센 인간이었다. 지각한 그를 한동안 문 밖에 세워둔 뒤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쯤 나타나 문을 열어준다. 그는 첫 만남부터 변호사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논박이라면 이골이 난 변호사지만 명상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쥐기가 어렵다. 그는 범상치 않은 선생님의 기세에 이끌려 점점 명상의 원리를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자가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아멜리 노통의 지극히 연극적인 중편 반전 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그저 소설의 앞부분만을 짧게 압축해놨을 뿐이다. 변호사가 명상을 통해 살인자로 거듭난 이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요치 않게 스포일러가 된다. 믿어도 좋으니 휴가철 맘 편히 누워 읽을 소설을 찾고 있다면 <명상 살인>을 강력히 추천한다. 후회할 일이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주인공을 완전히 다시 태어나게 만든 명상의 만트라들이 각 장 앞부분에 실려있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당신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달은 변호사가 살인자가 됐다면 당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세상은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닫아걸어도 기어이 뚫고 들어가 평화를 해치는 자극들로 가득하다. 하는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자극을 탓하기 쉽지만 명상은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당면한 사태는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있다. 역겨울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일이 터졌을 때 즉각 반응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심호흡을 하라. 눈을 감거나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다. 굳이 벌어진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눈앞의 벽지 패턴이나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쳐다보라.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 다시 그 사건을 마주해보라.


간단한 원칙에서 시작해 점점 명상의 진수를 체득한 변호사는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했음에도 끝내 자신을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시키지 않던 로펌 대표들과 자신의 차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 마피아들을 KO 시킨다. 조만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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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막 읽고싶은 마음이 쏟아지는 리뷰입니다.^^

한깨짱 2021-08-10 13:52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소설 호불호가 있더라구요! 알라딘 리뷰 봐도 1개 주신 분들도 있고, 번역 지적하는 지인분도 계시네요. 꼭 한번 훑어보세요.
 
칵테일, 러브, 좀비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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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쉬운 소설이다. 조예은 작가의 첫 번째 단편선이라고 하는데 1년도 안되어 5쇄를 찍었으니 대단한 성공이라 여길만하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작가가 먹고살 길을 찾았다. 아직도 돌파구를 궁리하는 핍진한 작가들을 위해 잠시 기도. .................................. . 오케이.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인생의 소설이라거나 최근에 읽은 가장 재미있는 장르 문학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름의 매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엄청 쉽고, 짧고, 흥미롭다. 요즘 세대에 읽힐만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물론 <습지의 사랑> 같은 작품은 심장을 몽글몽글 간질이는 설렘이 치사량까지 뿜어져 올라 개인적으로는 낯이 가렵긴 했지만 물귀신과 산귀신의 사랑이라는 점에선 정말 새롭다! 고 엄지를 올릴 만한 소설이었다. 재기 발랄이라는 말은 왠지 시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늙은 평론가나 할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재능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무난한 수사는 없을 것 같다.


실린 작품들을 좀 더 얘기하면 <초대>는 몇십 년째 목에 걸린 가시를 안고 사는 여자의 데이트 폭력 피해로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돌연 잔혹 살인극으로 방향을 트는 마라 맛 가득한 소설이다. 비린내를 싫어한다거나 이야기의 얼개를 더 강조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표제작 <칵테일, 러브, 좀비>는 뱀술을 먹고 좀비가 된 아빠와 함께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딸은 <월드워 Z> 같은 영화에 통달해 아빠가 좀비가 됐으며 다시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엄마는 여전히 "네 아빠 없이 어떻게 사니" 같은 답답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그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월드워 Z>을 아는 걸 보면 <웜 바디스>도 봤을 법 한데 그렇게 딱 잘라 아버지를 처리하는 걸 보면 성장기의 자녀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게 노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쓰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네. ㅋ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타임루프를 소재로 한 소설 공모에서 입상한 작품답게 그 장르를 아주 잘 구현한 작품이다. 다른 소재들이 워낙에 세다 보니 오히려 이 단편선에서는 가장 무난한 축에 꼽힌다. 얘기를 조금만 더 길게 해도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소개는 이쯤에서 마친다. 순수하게 재미로는 이쪽이 최고였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을 계기로 출판사 안전가옥의 책들을 유심히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트 시리즈의 작가들을 보니 심여울, 한켠, 전삼혜, 설재인, 김청귤 같은, 전설의 무림 고수부터 인디밴드의 리드보컬을 연상케 하는 이름까지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만큼 작품도 대단하길 기대하며, 정주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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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 - 개정판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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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 중에 편혜영을 좀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들을 특징짓는 문장을 써보자.


내장이 터져 나온 동물의 사체

타르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들러붙은 들개

하수관이 터져 오물에 잠긴 안방

비린내가 진동하는 숲

토사물로 가득한 뒷골목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그로테스크, 섬뜩함 같은 단어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특유의 공포로 버무려내는 재주가 있다는 평을 받는데, 내 생각엔 그냥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묘사하는 작가다. 아무런 가식도, 위선도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있는 그대로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나는 편혜영을 작품을 거꾸로 탐험하는 중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죽은 자로 하여금>은 여기에 실린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대중을 배려한 착한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사육장 쪽으로>는 그녀가 두 번째로 내놓은 단편선으로 2007년에 출간했다. 내가 읽은 것은 21년에 나온 재판이다.


끔찍한 수준으로 따지면 지금까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데 비위가 약하거나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어려울 정도다.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에선 우리에서 탈출한 개들이 어린 아들을 갈기갈기 물어뜯는 장면이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이유 없는 적의를 내뿜으며 거대한 트럭으로 위협하는 소설엔 깜찍하게도 <소풍>이란 제목을 붙였다. <밤의 공사>에서는 쓰레깃더미와 시커먼 들쥐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습지에 빠져 죽은 아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물론 여기에 실린 단편들이 모두 이렇게 섬뜩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섬뜩함이란 피부와 코를 자극하는 구체적인 상황 묘사를 의미하는데, 즉 소셜의 주 테마인 불안이 항상 그런 식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몇몇은 회사, 동물원, 일반 가정집 같은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평범이란 게 상대적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평하자면, 이 작품들에선 편혜영 자신,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불안이 남김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이제 막 두 권의 단편선을 내놓은 소설가. 글을 쓰는 일은 얼핏 낭만적인 서사로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연쇄살인마에게 쫓기는 서스펜스에 더 가깝다. 거기에 도통 앞날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가 더해지고. 끊임없이 낙선과 거절, 비평에 온몸이 뜯겨나가는 슬래셔 무비가 따라붙는다. 특히 <소풍>과 <사육장 쪽으로>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는 주인공들에게서 이제 막 백지를 펼친 소설가의 불안이 진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멈추어 선 채로 허공에 매달린 이정표를 읽었다. 모두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이정표는 언젠가 도착할 도시의 이름을 알려줄 뿐, 여기가 어딘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소풍>, p.34)


이보다 더 완벽한 묘사가 있을까? 글쓰기라는 건 그렇다. 작가가 될 거라는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포기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의 신이 내가 얼마큼이나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이 극단의 외로움을 이해하며, 나는 그녀의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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