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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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의 일을 돕던 타락한 변호사가 파탄을 맞은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명상을 배운다. 일에만 몰두하는 남자. 24시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는 변호사에게 아내가 좋은 남편이자 아빠가 될 것을 요구하며 명상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온갖 사치품을 사들이는 아내의 뻔뻔한 요구가 혐오스러웠지만 일단은 듣기로 한다. 부부 생활은 마음속 말을 천만 번 고민하다 꼬깃꼬깃 구겨 밑바닥 깊숙이 쑤셔 넣는 게 진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첫 수업부터 지각을 했다. 애초에 강제성이 있었던 터라 그딴 게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상 선생님은 이 회의적이고 까칠한 변호사보다 몇 배는 기가 센 인간이었다. 지각한 그를 한동안 문 밖에 세워둔 뒤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쯤 나타나 문을 열어준다. 그는 첫 만남부터 변호사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논박이라면 이골이 난 변호사지만 명상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는 좀처럼 주도권을 쥐기가 어렵다. 그는 범상치 않은 선생님의 기세에 이끌려 점점 명상의 원리를 터득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자가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아멜리 노통의 지극히 연극적인 중편 반전 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그저 소설의 앞부분만을 짧게 압축해놨을 뿐이다. 변호사가 명상을 통해 살인자로 거듭난 이후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필요치 않게 스포일러가 된다. 믿어도 좋으니 휴가철 맘 편히 누워 읽을 소설을 찾고 있다면 <명상 살인>을 강력히 추천한다. 후회할 일이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주인공을 완전히 다시 태어나게 만든 명상의 만트라들이 각 장 앞부분에 실려있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당신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달은 변호사가 살인자가 됐다면 당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세상은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닫아걸어도 기어이 뚫고 들어가 평화를 해치는 자극들로 가득하다. 하는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자극을 탓하기 쉽지만 명상은 우리에게 다른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당면한 사태는 객관적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자신에게 달려있다. 역겨울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일이 터졌을 때 즉각 반응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심호흡을 하라. 눈을 감거나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다. 굳이 벌어진 일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눈앞의 벽지 패턴이나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쳐다보라.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 다시 그 사건을 마주해보라.


간단한 원칙에서 시작해 점점 명상의 진수를 체득한 변호사는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했음에도 끝내 자신을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시키지 않던 로펌 대표들과 자신의 차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 마피아들을 KO 시킨다. 조만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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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막 읽고싶은 마음이 쏟아지는 리뷰입니다.^^

한깨짱 2021-08-10 13:52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소설 호불호가 있더라구요! 알라딘 리뷰 봐도 1개 주신 분들도 있고, 번역 지적하는 지인분도 계시네요. 꼭 한번 훑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