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퇴마사 1 - 장안의 변고
왕칭촨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퇴마라면 따지지 않고 보는 편이다. 문제는 책이든 영화든 퇴마 이야기가 굉장히 드물다는 점이다. 책으로는 사실상 <퇴마록> 이후 읽어본 기억이 없지만, 이 소설은 사실 '퇴마' 보다는 '현대 무협 판타지'로 보는 게 더 맞지 않나 싶다. 물론 논란의 여지없는 대 명작 임에는 분명하지만.


영화로는 종종 나오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도 귀신 얘기 말고 '퇴마'로만 한정했을 땐 상당수가 제외되는 게 사실이다. 기억나는 걸 시간 순으로 적어보면 <컨저링>, <검은 사제들>, <사바하> 정도다. 그나마 장재현이라는 오컬트 마니아가 한국 영화계에 저 두 편을 던져놨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휑했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제8일의 밤>이라는 동종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여기에는 찰나의 눈길조차 주지 말자.


그러니 내가 <당나라 퇴마사>라는 제목을 봤을 때 얼마나 큰 기대를 했겠는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당나라 퇴마사>는 퇴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태평공주가 퇴마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들어보자.


퇴마사의 '마'는 곧 간사한 무리를 뜻하고, 퇴마사에서 다루는 것은 바로 그 간사한 자들이다.


그렇다. 퇴마사는 곧 권모술수를 부려 조정을 어지럽히는 간신배들을 잡아들이는 관청이다. 시대는 당나라.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였던 무측천이 물러난 뒤 당태종 이세민의 자손이 복권됐으나 정치 암투로 여전히 혼란한 정국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단순한 정치 극화는 아니다. 주인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나라 오대 도문 중 최고로 손꼽히는 영허문의 열일곱 번째 제자 원승으로, 비록 순서는 열일곱째지만 재능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기재 중 기재, 여러 사형들을 제치고 스승 홍강 진인의 뒤를 이어 영허문의 관주가 되는 인물이다. 그의 필살기는 화룡점정! 붓으로 그린 용이 튀어나와 비바람을 일으키고 적들을 물리치는 화려한 도술이다. 노자를 시조로 하는 이 도교의 도사들이 실제로 그런 도술을 부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교가 당, 송 시대에 성행했던 종교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흔히 영웅문 1부로 알려진 <사조영웅전>의 주요 인물 구처기도 도교의 도사다. 염라대왕을 필두로 하는 사후 세계를 만든 것도 도교고, 이는 나중에 불교에 흡수되기도 한다. 각종 신선술과 무술이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의천도룡기>의 주인공 장무기의 할아버지이자 태극권을 창시한 장삼봉이 조사로 알려진 무당파가 가장 유명한 도교 계열 무술 집단이다. 물론 지금까지 한 얘기는 전부 무협지에서 극화된 내용이니 참고하시길.


아무튼 이쯤 얘기했으면 <당나라 퇴마사>가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을 것이다. 추리 소설과 비슷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긴 하지만 그저 슈퍼 똑똑이 주인공 원승만 알아챌 수 있는 단서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한 뒤 그의 입을 빌려 긴긴 해설을 덧붙이는 천재 탐정 소설의 전형을 따른다. 가위바위보로 비유하면 상대가 보를 낼 걸 예상했으니 가위를 내야겠지만 그걸 예상한 상대가 다시 주먹을 낼 거라 예상하고 보를 내려하지만 거기까지 내다본 상대가 다시 가위를 내려는 순간 다시... 하는 식의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달까? 캐릭터 또한 전형적이다. 온갖 미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먼치킨 남자 주인공. 단순하고 직선적인, 싸움 잘하는 좌충우돌 행동파 동료. 말괄량이 공주. 미모의 여자 조수. 선인을 가장한 음험한 악당.


<당나라 퇴마사>를 대단히 훌륭한 장르 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제 막 찾아온 가을 저녁을 고민 없이 보내기엔 괜찮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이후로 이렇게 재미있는 글쓰기 책은 처음이다. 교정 교열자로 일하며 저자와 겪었던 특별한 경험과 원 포인트 레슨 문장 다듬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앞쪽은 무슨 추리 소설을 읽는 마냥 흥미진진하고 뒤쪽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충고로 가득하다. 얼마 전  읽은 <우리말 어감 사전>은 같은 작가가 썼음에도 좀 지루한 데가 있었다. 보편적 법칙을 다루기보다는 개별 단어에 집중하다 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어색한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조목조목 밝혀 글을 쓸 때 무엇을 넣고 빼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명확하게 가르친다. 진정으로 유용하다.


몇 가지만 소개해보자. 우선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접미사 '-적'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은 습관적으로 쓰일 때가 많으며 대개 빼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 훨씬 상쾌해진다.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무엇이 더 나은가?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 보여준 활약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들'은 '모든'으로 수식되는 명사 거나 복수형 명사에는 붙이지 말아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손에 꽃을 들고 자신들의 부모들을 향해 뛰어갔다.

모든 아이가 손에 꽃을 들고 자기 부모를 향해 뛰어갔다.


굳이 '-들'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문장도 있다.


사과나무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것'은 정말로 중독성이 강하다. '~하는 것'을 주어나 목적으로 쓰려다 어색한 문장을 만들기 쉬운데 곰곰이 생각해보고 정말 불가피할 때만 쓰는 것이 좋다. 다음은 주어로 쓰인 경우다.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이번엔 목적어로 쓴 경우를 보자.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친구들과 같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문장이란 참 신기하게 한두 글자를 빼고 더하는 것만으로 가독성에 큰 차이를 보인다. 때로는 의미까지 완전히 변하는데 의식조차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자, 한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이 한국어를 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글쓰기의 유일한 규칙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 외는 모두 나름일 뿐이다. 심지어 '외국식 표현'이라 지적하는 문장까지도 그걸 '틀렸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말과 글은 늘 변한다. 만약 한국어 글쓰기에 유일무이한 법칙이 있다면 그건 언제 만들어진 걸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직후에?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었을 때? 표준국어대사전의 최신판이 발간된 날? 설령 완벽한 시점을 선택하더라도 그걸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는 여전히 문제로 남을 것이다.


소소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매주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을 쓰는 입장에서 내가 선택하는 기준은 역시 가독성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나는 늘 읽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나와 같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케티의 사회주의 시급하다
토마 피케티 지음, 이민주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가 1990년을 사는 나에게 "당신은 2020년이 되면 <사회주의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거요"라고 말했다면 난 웬 말 같지 않은 소리냐고 했을 거다.(p.9)


토마 피케티가 막 성인이 되던 해에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국가와 함께 '진짜 사회주의'가 몰락해버렸다. 모든 인간에게 평등을 주장했던 공산주의의 숭고한 정신은 무능한 독재자들에 의해 오해를 사고 더럽혀졌지만 실패와 몰락이라는 조롱은 모두 그 멍청이들이 아닌 공산주의에 달려가 붙었다.


이후 자본의 폭주를 막아 세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아니 심지어 분배라는 말만 들어도 저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나 보잘것없는 배급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인민들을 떠올리며 경기를 일으켰다. 정부의 개입은 무조건 악이었고 복지 예산의 증가와 공공의료보험의 도입은 공산주의의 재림으로 여겨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복지 예산으로 먹고사는 빈곤층이 '공산주의 꺼져라'라는 피켓을 들고 복지 예산을 증액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토마 피케티는 이런 세상에서 다시 '사회주의'를 외치는 용기 있는 경제학자다. 그의 주 관심사는 자본의 폭주가 시작된 이래 늘어만 가는 부의 불평등이다.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명 참여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주장하는데, 그 근간은 교육의 평등과 사회보장 국가, 권력과 소유권의 순환, 친환경, 사회 연방주의 그리고 지속 가능하며 공정한 세계화 등이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국가들이 한데 모여 연방을 이룬다는 게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지만 이미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한 연방 체계를 구축한 유럽에서는 완전히 꿈같은 일만은 아닌 모양이다. 유럽 의회가 지금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법을 만들고 그것을 전 유럽에 강제하며 예산을 승인하고 집행해 평등한 독일, 평등한 프랑스, 평등한 이탈리아가 아닌 평등한 유럽을 만드는 것.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는 정책이 현실이 되려면 강력한 유럽 의회의 설립은 필수다. 클릭 한 번으로 자산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는 오늘날 한 국가가 높은 부유세와 법인세를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한들 부는 얼마든지 도망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국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셈법이 치열한 판국에 인구 규모도, 가진 자산도 다른 나라가 자기의 운명을 좌우할 의회 설립에 선뜻 합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관전하는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사회주의 시급하다>는 피케티가 르몽드 지에 게재한 칼럼을 모아 놓은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이 파편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특성상 주장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한국인에겐 생소한 내용도, 무관한 내용도 많다. 사실 그렇게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21세기 자본>의 위엄을 들어 만지작만지작했으나 번역의 질과 두께에 질려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사람이, '그래도 피케티의 글을 한번 읽어 봤다'는 만족을 얻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리기를 시작한 건 꽤 오래됐지만 진지하게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다. 화, 목, 토 요일을 정해놓고 계획한 시간 또는 거리만큼 달린다. 화, 목은 주로 인터벌 달리기를 하고 토요일은 중거리 연습이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그냥 20, 25, 30분 시간을 정해놓고 내키는 대로 달리고 있다.


음악은 주로 락을 듣는다. 항상 똑같은 건 아닌데, 첫 곡은 웬만하면 반 헤일런의 <Jump>로 시작한다. 빰, 빰, 빰, 빠바 빠밤 빠바바~ 하는 키보드 소리에 발가락 끝에서부터 청량감이 몰려온다. 다음으로 니켈백의 <Burn It to the Ground>가 이어폰을 울리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자신감이 솟으며 나도 모르게 두 발에 힘이 실린다. 록키 O.S.T의 <Going The Distance>와 <Gonna Fly Now>는 풀 죽은 페이스를 살리는데 더할 나위 없는 치료약이다. 레이스 종반에 이 노래가 들리면 아무리 힘들고 진이 빠져도 반짝, 다시 살아난다. 처음엔 킬로미터당 6분이 넘는 속도로 달려도 한 바퀴가 멀고 먼 꿈의 나라 같았지만 지금은 5분 20초대로 6km를 달려도 가뿐하다. 최고 기록은 킬로미터당 5분 6초다.


달리기가 좋은 점은 운동복과 신발만 있으면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만들어진 트랙이나 강변도로가 최고지만 인파가 쏟아지는 길이 아닌 이상 어디서라도 달리기는 가능하다. 이런 걸로 따지면 걷기가 최고 아닌가?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뭐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둘을 대체 가능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달리기 전 충분한 스트레칭이 되어 있고 적당량의 과당까지 섭취해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에서 초반 페이스 조절까지 완벽해 3km쯤에서 맞이하는 러너스 하이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설명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대로 달리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걷기로는 아무리 오래 걸어도 이런 느낌을 받기 어렵다.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서였던가, 어느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극도의 몰입 상태에서 최고의 연주가 나올 때면 종종 '제발 나를 총으로 쏴줘'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 것 같다.


하루키 책 리뷰에 온통 내 얘기만 늘어놓으니 좀 미안하다. 게다가 이건 뭐 올림픽 마라톤 영웅이나 세계적 기록을 보유한 달리기 선수의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가감 없이 표현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기니 같잖아도 좀 이해해 주시길. 하루키도 이 책에서 비슷한 고백을 한다. 사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그나 나나 달리기로 밥을 먹고사는 전문 러너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꾸준히 하다 보면 결과를 막론하고 나름의 철학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루키는 이 수필에서 그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 애독자라면 머나먼 바다 건너에 사는 이 소설가와 보이지 않는 한줄기 끈이 연결됐음을 느낄 것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와서, 언제까지 달릴 것이냐 하면 글쎄, 솔직히 별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은 킬로미터당 4분대의 속도로 10km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언제까지 달성할 건지, 달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건지,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해 놓은 건 아니다. 사람들은 달리기처럼 대단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에는 엄청난 목적이 있을 거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루키는 종종 '달리기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 달리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순간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당신도 달려보기 바란다. 운동복과 운동화, 그리고 길.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 - 배움의 모든 것을 해부하다
스타니슬라스 드앤 지음, 엄성수 옮김 / 로크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움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배움 아닐까? 현세 인류를 특이점에 데려다줬다고 평가받는 인공지능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 덕분이었다. 인간의 뇌를 본떠 배움의 기본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오랜 시간 인간의 뇌가 완벽한 백지, 일명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했다. 뇌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수 십만 년에 걸친 진화의 시간은 배우는 법이라는 궁극의 로직을 인간의 뇌신경에 새겨 넣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몰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갓난아이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부모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을 안아 드는 여자를 바라보며 마법의 단어 '엄마'를 내뱉는다. 그건 엄마가 수없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엄마라고 외쳤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아이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동시에 나온 소리가 그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간단한 배움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이 무언가를 가리켰을 때 그 대상이 아닌 손 자체를 바라본다. 이는 강아지의 지능을 테스트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 외에도 인간의 뇌는 관성, 중력 같은 물리 법칙에서 심지어 확률처럼 복잡한 개념까지 이미 알고 있다. 배움의 가장 위대한 점은 구체적인 현상으로부터 일반 법칙을 추론해내는 것인데, 이 추상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동안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 죽는 그 순간까지 바보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손에 쥐고 있던 물체를 놔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면 아이는 어떤 형체 또는 무게를 가진 사물은 전부 중력에 의해 밑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중력이라는 건 모르지만 어떤 힘의 존재를 추론해내어 그것을 전체 사물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법칙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우리는 컵도 땅에 떨어지고, 연필도 떨어지고, 사과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개개의 사물 별로 모두 배워야만 한다. 이는 오늘날의 기계학습이 가진 취약점이기도 하다. 단순히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기 위해 기계에게 제공해야 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미지의 양을 떠올려보자. 기계는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배움의 법칙을 모사했고 오늘날 강화 학습과 같은 수많은 기계 학습법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합종연횡 중이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는 이렇듯 배움 그 자체를 해부하는 책이다. 단순히 뇌과학 얘기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도 곁들여 이쪽 개념을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머신러닝 개론서보다는 이쪽을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기르고 있는 사람 혹은 아이를 낳아 기를 계획이 있는 사람에게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알다시피 어떤 배움은 특정 나이를 벗어나기 전에 익히지 못하면 평생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뇌가 어느 시기에 어떤 가소성을 가지는지 안다면 이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을 마련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최신 뇌과학 교육을 의무화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용은 상상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며 유용함이라는 측면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