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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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는 7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환상 소설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양이 신선? 요괴? 아무튼 무언가에게 사로잡혀 '바쿠리야'라는 가게를 떠날 수 없는 한 남자가 찾아오는 손님들의 능력을 교환해 준다. 이런 것도 능력이야? 라고 생각되는 것도 상관없다. 모든 여자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남자, 살던 곳을 떠나려고 하면 늘 폭우가 내리는 기인, 다니는 모든 회사를 파산시키는 저주왕 등등. 성격만 맞는다면 능력은 얼마든지 교환 가능하다. 단, 조건이 있다. 바뀌는 능력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 사태를 후회하지 않을 사람들만 '바쿠리야'에서의 교환이 가능하다.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다.


'바쿠리야'가 이야기의 중심인 것은 맞지만 7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갖는다. 패턴이 좀 지루할 만도 한데 나름 요리조리 비틀어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바쿠리야' 앞에 데려다 놓는다. 각오가 되면 가게 구석에 앉아 쉬던 고양이가 손님의 손등을 할퀴고 주인은 그 피를 수집해 병에 담는다. 능력이 바로 교환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성격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이 성격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예컨대 제구가 되지 않는 강속구를 던지는 능력이 무언가를 잘 빠는 능력과 교환되는 식이다. 뭘 기대했는가?


교환될 능력이 결정되면 각각의 주인들에게 '바쿠리야'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리고 그날 자정 능력이 교환된다. 번개가 치고 돌풍이 부는 건 아니고 그냥 스르륵 무언가가 빠졌다가 들어간다. 자기가 어떤 능력을 갖게 됐는지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대개는 해피엔딩인데, 때로는 그렇게만은 부를 수 없는 결말이 기다린다. 인생지사 역시 새옹지마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소설은 쉽고 간결하다. 치밀한 심리 묘사나 가슴을 탁 치는 문구 같은 건 없다. 문장은 오로지 전개를 위해서만 헌신한다. 이야기는 파바박, 책장은 훌훌 날아다닌다. 솔직히 일본 장르 문학의 전형적 특징을 답습한다.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읽는 책이다.


나는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외국의 크고, 다양한 출판 시장이 부러워진다. 우리는 책과 독서라는 행위에 너무 커다란 짐을 지우는 경향이 있다. 생각 없이 TV를 키는 것처럼 책을 펼 수는 없는 걸까? 심심풀이 땅콩 역할을 하는 책이 과연 저 위대한 문학들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걸까? 따지고 보면 문학이라는 것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게 얼마 안 됐는데 말이다.


<당신의 능력을 교환해드립니다>를 읽는다고 해서 대단한 소양이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킬링타임. 요즘 같은 시국에 시간을 잘 때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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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4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효용은 무궁무진. 킬링타임에도 최고죠. ^^

한깨짱 2021-02-15 14:11   좋아요 0 | URL
최고의 친구죠!
 
광기와 우연의 역사 (최신 완역판) - 키케로에서 윌슨까지 세계사를 바꾼 순간들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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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역사의 굵직한 분기점을 개인과 세계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문명의 향방을 가른 사건에서부터 개인의 인생을 뒤바꾼 결정적 순간까지. 이 책은 이런 에피소드 14개를 엮어 만든 선집이다. 여기에 그 몇 개를 소개하니 당신의 구미를 당기는지 확인해 보라.


1. 키케로의 죽음과 로마 공화국의 종말

시저를 강아지 사료의 브랜드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정말 불행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재자가 '브로콜리 너마저!'(농담임) 라는 말을 남긴 채 절친의 손에 죽고 만다. 혼돈에 빠진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역사는 키케로를 무대 위에 올린다.


2. 동로마 제국의 종말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터키의 수도가 한때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던(같은 편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긴 하지만) 서양 문화의 총아는 야심만만한 투르크 젊은이의 위협에 직면한다.


3. 불멸을 향해 질주하다

오늘날 남미의 정치불안과 가난은 1513년 깡패 발보아가 태평양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걸지 모른다. 지극히 보잘것없는 개인의 우연한 모험이 500년이 넘는 역사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믿어지는가?


4. 세계사를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

유배지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유럽과 맞선다. 그러나 이 마지막 전투의 승부를 가른 건 나폴레옹의 실수도, 적군의 우수함도 아니었다. 우직하고 성실하지만,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 난세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알아보자.


5. 괴테의 마지막 사랑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일흔네 살의 괴테가 열아홉 살 소녀에게 청혼을 한다. 한때 괴테는 그 소녀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흠모했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욕망이 '승화'되면 예술가가, 그렇지 못하면 범죄자가 된다고 말했다.


6.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저주

실리콘밸리가 들어산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는 한때 그 전체가 개인의 땅이었다. 미국 최고의 갑부! 그 이름은 록펠러도 카네기도 듀폰도 아니다. 단언컨대 당신은 그 남자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7. 미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 케이블

모두가 안된다고 하는 일에 끈질기게 도전하며 비웃음을 사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부침을 거듭한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은 최후의 순간 대개 원하는 자리에 우뚝 선다.


8. 봉인 열차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는 스위스 구두공의 다락에 세 들어 살던 러시아 망명자였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스위스는 탐정 소설의 주무대였다. 식당 종업원에서 호텔 벨보이, 귀부인, 사업가, 국회의원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씩 비밀업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 키 작은 사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남자는 치외법권으로 인정되는 봉인된 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향한다. 기차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순간 수만 명의 노동자와 온갖 무기를 든 의장대가 망명지에서 돌아온 혁명가를 위해 인터내셔널가를 노래한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은 장갑차에 서서 민중을 향해 첫 연설을 한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고 나면 역사의 본질은 역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역사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여 시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역사는 진심으로 재미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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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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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은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이다. 만화가이자 게임회사 직원이었던 작가 황모과가 6편의 단편 소설을 엮어 만든 SF 단편선이다.


SF! 그러나 이 작가가 과학 기술을 이용해 그리려는 이야기들은 다른 SF 소설들과 차이를 보인다. 휘황찬란한 미래 세계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기한 개념, 우울한 디스토피아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과거의 아픈 역사, 소외된 이들이 과학에 힘입어 어두운 감옥에서 해방된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진위가 명백해진 역사조차 다양한 집단의 은폐와 공격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의 희생자들은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한다. 황모과의 SF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해 그들을 위한 위로제를 열어준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앞에서는 어떠한 진실도 은폐될 수 없다. 논란에 종지부를 내리는 과학. 어둠의 장막을 찢는 진실의 검.


그러나 기술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진실이 영원불멸의 석판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잊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TV 뉴스와 신문에 선명하게 찍힌 사실들이 우리 기억 속에서 풍화되는 속도를 떠올려보자. 황모과의 소설들은 혼돈의 웅덩이에서 진실을 꺼내오는 건 기술이지만 그걸 지키고 기억할 의무는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설의 재미는 그 '착한 의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직설적이다. 너무 명백한 의도가 되레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감상의 묘가 없이 꽉짜인 통조림 같다. 어떤 면에선 너무 착해서 답답하기도 하다.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이는 순전히 개인적 호오에 의한 평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조명하는 방식은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윤리니 도덕이니, 사실이니 아니니를 다 떠나 무엇에서 가장 위로를 받았나 생각하면 늘 쿠엔틴 타란티노가 떠오른다.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이 남자가 저지른 일들을 떠올려보자. 이것이 바로 우리, 아니 우리라는 말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나의 진심'이라고 말하겠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라면 한 번쯤 히틀러의 대가리에 직접 총알을 박아 넣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사실 지루하기까지 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디카프리오가 찰스 맨슨 패거리를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이는 장면에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민족은 이완용의 무덤을 발로 밟는 것으로 나라를 잃은 한을 풀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의 무덤을 파헤쳐 매질을 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윤리와 도덕은 현실의 규칙이지 이야기의 규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상상을 통해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하고, 그렇게 가벼워진 몸으로 현실이라는 짐을 질 수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허락되지 않는 상상을 하는 것. 나의 적들을 모두 그러모아 소각장에서 불태워 없애는 것.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개취에 의한 평이다. 취향이 참 이상하네요 라고 말한다면 개취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라고 되묻고 싶다. <밤의 얼굴들>은 착한 의도로 가득한 무자극 SF다. 한 권을 후루룩 읽고 나니 칼칼한 게 땡겨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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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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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계가 하루키로 들썩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서야 몇 권을 읽어봤지만, 역시 읽지 않은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유명한 건데?라는 의문은 오래 품지 않았다. 그런 의문을 깊게 추구할 만큼 가치 있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후 나는 찔끔찔끔 하루키의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군 싶은 장편 몇 권에서,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작품들, 그리고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없는 수필집까지. 어느새 내 서가는 단일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가장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꽤나 좋아한다. 특히 반듯한 현실 세계를 걷던 주인공이 스르륵 이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지루했던 내 현실은 붕괴하고 산뜻한 이계의 바람이 몰려든다. 신기하게도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게임에서부터 새로운 소설의 소재, 그리고 회사에 적용할 새 업무 방식까지. 하루키의 소설들이 완고한 슈퍼 에고를 잠재우고 화산처럼 들끓는 이드의 문을 열어주는 셈이다.


<일인칭 단수>는 그간 하루키가 보여줬던 익숙한 테마를 하나도 빠짐없이 반복하는 소설이다. 어느 무리에도 끼지 않는 고독한 남자가 주인공이고(하루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를 맞닥뜨리거나 상실을 경험하고, 이상한 세계에 잠깐 발을 들였다 다시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 뻔뻔한 반복이 지겨운 사람들에겐 <일인칭 단수>가 매력 없는 소설이겠지만 나는 다 망해가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까지 꼼꼼하게 챙겨보는, 어떻게 보면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다. 매일 밤 예전에 봤던 영화를, 수십, 수백 번 질리지도 않고 감상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반복해 준다면야 나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다. 물론 하루키 자신의 작가적 성취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잔인한 말이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작가로 전락하여 세상에서 잊혔으면 좋겠다. 애초에 유명해서 좋았던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그의 이야기에 매료된 거니까. 게다가 그걸 앞으로는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즐거워진다. 허락되지 않은 상상을 해본다. 하루키의 시그니처인 어두운 바 구석에 앉아, 싱글 몰트 위스키(내 최애는 글렌 모렌지 시그넷이다) 한 잔을 홀짝이며 단 둘이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하루키 소설에 대해 논할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라 이제는 좀 무안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멀쩡한 하늘에 두 개의 달을 띄어놓고도(1 Q84)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압도적 이야기의 주인이다. 물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 70세가 넘어버린 소설가가 쿨하고, 고독하고, 한편으론 오만하기까지 했던 30대에(80년대) 머무르려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이제 우리에게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게 됐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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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4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끼에 대한 제 생각을 갈피잡기 힘들었는데 한깨짱님 이 글을 보니 아하싶네요. ㅎㅎ 어쨌든 하루끼는 좋아하기도 그렇다고 싫어하거나 무관심하기도 어렵다고 할까요? ^^

한깨짱 2021-01-25 13:51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겠습니다! ㅋㅋ
 
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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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은 우아한 문체로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부당한 대우 아래서도 소설은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감당하기 힘든 차별을 경험했을 때, 그리고 그 차별이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암벽이 되어 인생을 가로막을 때, 인간은 조소와 비아냥으로 세상을 대하려는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이는 때때로 풍자로 승화하여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인종차별 소설들은 대개 이런 방향성을 가졌던 것 같다. 한바탕 웃음으로 마음을 휘저은 뒤 가라앉은 한을 그러모아 밖으로 토해내는 것.


그러나 <니클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내가 읽어왔던 그 모든 소설과 완전히 다른 궤를 그린다.


가끔 이런 책을 한 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이 있다. <니클의 소년들>이 그렇다. 나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의 마법 같은 분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연습을 해야 이토록 잔인한 역사를 이토록 우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려면 영화 <쇼생크 탈출>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착 가라앉은 레드의 내레이션이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는 앤디의 삶을 관조하는 영화.


<니클의 소년들>은 흑인 소년 엘우드가 우연히 차량 절도범의 차를 얻어 탔다 공범으로 몰려 '니클'이라는 소년원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다. 엘우드는 그날 대학으로 강의를 들으러 가는 중이었다. 고등학생이었지만 충분히 대학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 얻은 기회였다. 가난한 흑인 소년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대학까지 히치하이킹과 도보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자기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열 수 있는 기회의 첫날 엘우드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니클에서 아이들은 백인 교도관의 취미 생활에 이용된다. 끊이지 않는 성폭행과 구타. 구타에는 주로 가죽 채찍이 이용됐는데 그렇게 매질을 당한 뒤에는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때때로 매를 맞다 죽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 교도관은 니클의 음침한 땅 밑에 그들을 파묻었다. 소설은 시간이 흘러 니클의 흙 속에서 수많은 유골이 발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묘비명도 없는 평평한 무덤들이 드디어 빛을 보지만, 살아서도 문제였던 그들은 죽어서까지 문제가 되는 비극에 빠진다. 존재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죽음마저 부정되는 세상을 맞닥뜨렸을 때 느낄 억울함에 비하면 살아생전의 비극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니클의 소년들>이 대단한 이유는 흔히 문학이라 불리는 것들이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문체를 뛰어난 수준으로 구현함에도 장르 소설을 방불케 하는 이야기의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더 부족할 것 없는 이 소설에 구성의 완벽함을 더해 독자를 놀라게 한다. 마지막 장에 다다른 순간 당신은 이 영민한 작가의 의도에 소름이 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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