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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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계가 하루키로 들썩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서야 몇 권을 읽어봤지만, 역시 읽지 않은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유명한 건데?라는 의문은 오래 품지 않았다. 그런 의문을 깊게 추구할 만큼 가치 있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후 나는 찔끔찔끔 하루키의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군 싶은 장편 몇 권에서,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작품들, 그리고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없는 수필집까지. 어느새 내 서가는 단일 작가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가장 많은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이제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꽤나 좋아한다. 특히 반듯한 현실 세계를 걷던 주인공이 스르륵 이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지루했던 내 현실은 붕괴하고 산뜻한 이계의 바람이 몰려든다. 신기하게도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게임에서부터 새로운 소설의 소재, 그리고 회사에 적용할 새 업무 방식까지. 하루키의 소설들이 완고한 슈퍼 에고를 잠재우고 화산처럼 들끓는 이드의 문을 열어주는 셈이다.


<일인칭 단수>는 그간 하루키가 보여줬던 익숙한 테마를 하나도 빠짐없이 반복하는 소설이다. 어느 무리에도 끼지 않는 고독한 남자가 주인공이고(하루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를 맞닥뜨리거나 상실을 경험하고, 이상한 세계에 잠깐 발을 들였다 다시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이 뻔뻔한 반복이 지겨운 사람들에겐 <일인칭 단수>가 매력 없는 소설이겠지만 나는 다 망해가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까지 꼼꼼하게 챙겨보는, 어떻게 보면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다. 매일 밤 예전에 봤던 영화를, 수십, 수백 번 질리지도 않고 감상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반복해 준다면야 나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다. 물론 하루키 자신의 작가적 성취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잔인한 말이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작가로 전락하여 세상에서 잊혔으면 좋겠다. 애초에 유명해서 좋았던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그의 이야기에 매료된 거니까. 게다가 그걸 앞으로는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즐거워진다. 허락되지 않은 상상을 해본다. 하루키의 시그니처인 어두운 바 구석에 앉아, 싱글 몰트 위스키(내 최애는 글렌 모렌지 시그넷이다) 한 잔을 홀짝이며 단 둘이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우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하루키 소설에 대해 논할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얘기라 이제는 좀 무안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멀쩡한 하늘에 두 개의 달을 띄어놓고도(1 Q84)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압도적 이야기의 주인이다. 물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 70세가 넘어버린 소설가가 쿨하고, 고독하고, 한편으론 오만하기까지 했던 30대에(80년대) 머무르려 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이제 우리에게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게 됐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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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4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끼에 대한 제 생각을 갈피잡기 힘들었는데 한깨짱님 이 글을 보니 아하싶네요. ㅎㅎ 어쨌든 하루끼는 좋아하기도 그렇다고 싫어하거나 무관심하기도 어렵다고 할까요? ^^

한깨짱 2021-01-25 13:51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