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얼굴들
황모과 지음 / 허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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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은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이다. 만화가이자 게임회사 직원이었던 작가 황모과가 6편의 단편 소설을 엮어 만든 SF 단편선이다.


SF! 그러나 이 작가가 과학 기술을 이용해 그리려는 이야기들은 다른 SF 소설들과 차이를 보인다. 휘황찬란한 미래 세계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기한 개념, 우울한 디스토피아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과거의 아픈 역사, 소외된 이들이 과학에 힘입어 어두운 감옥에서 해방된다.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진위가 명백해진 역사조차 다양한 집단의 은폐와 공격에 상처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의 희생자들은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지 못한다. 황모과의 SF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해 그들을 위한 위로제를 열어준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 앞에서는 어떠한 진실도 은폐될 수 없다. 논란에 종지부를 내리는 과학. 어둠의 장막을 찢는 진실의 검.


그러나 기술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진실이 영원불멸의 석판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잊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TV 뉴스와 신문에 선명하게 찍힌 사실들이 우리 기억 속에서 풍화되는 속도를 떠올려보자. 황모과의 소설들은 혼돈의 웅덩이에서 진실을 꺼내오는 건 기술이지만 그걸 지키고 기억할 의무는 우리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설의 재미는 그 '착한 의도'에 비례하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직설적이다. 너무 명백한 의도가 되레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감상의 묘가 없이 꽉짜인 통조림 같다. 어떤 면에선 너무 착해서 답답하기도 하다.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이는 순전히 개인적 호오에 의한 평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역사의 희생자들을 조명하는 방식은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윤리니 도덕이니, 사실이니 아니니를 다 떠나 무엇에서 가장 위로를 받았나 생각하면 늘 쿠엔틴 타란티노가 떠오른다. <바스타즈: 거친 녀석들>이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이 남자가 저지른 일들을 떠올려보자. 이것이 바로 우리, 아니 우리라는 말은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조장할 수 있으므로 '나의 진심'이라고 말하겠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라면 한 번쯤 히틀러의 대가리에 직접 총알을 박아 넣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사실 지루하기까지 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디카프리오가 찰스 맨슨 패거리를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이는 장면에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민족은 이완용의 무덤을 발로 밟는 것으로 나라를 잃은 한을 풀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의 무덤을 파헤쳐 매질을 하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윤리와 도덕은 현실의 규칙이지 이야기의 규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상상을 통해 억눌렸던 욕망을 분출하고, 그렇게 가벼워진 몸으로 현실이라는 짐을 질 수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허락되지 않는 상상을 하는 것. 나의 적들을 모두 그러모아 소각장에서 불태워 없애는 것.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개취에 의한 평이다. 취향이 참 이상하네요 라고 말한다면 개취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라고 되묻고 싶다. <밤의 얼굴들>은 착한 의도로 가득한 무자극 SF다. 한 권을 후루룩 읽고 나니 칼칼한 게 땡겨 라면을 하나 끓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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