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말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외르크가 테러리스트로 살인을 저지르고 20여 년간 수감되어 있던 시간 동안 세월이 무심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에 따라 행동한 외르크는 20여 년 뒤 첫 주말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이룰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꿈꿔왔던 것 모든 것들이 형체도 알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외르크는 지금 절망하고 후회하고 나락으로 떨어져야 할까.
친구들은 사업가로, 변호사로, 기자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며 몇 몇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행복하지 않다 하더라도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 외르크가 감옥에서 보낸 20여 년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을 터이나 친구들과 달리 자신은 지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본 외르크의 외형적인 모습일 뿐 그는 누나 크리스티아네와 친구들에게 "숲 냄새를 맡고 싶었고, 선루프와 차창을 죄다 열어놓고 프랑스의 시골길을 달리고 싶었고, 영화관에도 가고 싶었고, 친구들과 파스타를 먹고 와인도 마시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꼭 차창을 열어 팔을 내밀어 바람을 한껏 느끼는 모습을 보는 듯 이 말을 하는 외르크의 모습에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런 외르크의 변화가 마르코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겠으나 외르크가 이런 꿈을 꾸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페르디난트는 아버지가 왜 테러리스트로 살아갔는지, 감옥에서 나온 지금 아버지가 예전에 저질렀던 많은 사건들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외르크는 그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이 행했던 일들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페르디난트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그동안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한 가족들의 고통과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견뎌왔는지에 대해 말하며 분개한다. 아버지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20여 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던 아버지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꼭 그것이 궁금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어머니를 홀로 외롭게 내버려두었으며 아버지가 죽인 사람들의 비난을 어머니와 함께 떠안아야 했던 그 세월을 아버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일제가 그리는 작품 속의 '얀'은 마르코나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었던 시절의 외르크가 감옥에 가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살아갔지 않을까 싶을 테러리스트로의 삶을 그리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일제가 그리는 작품속의 '얀'을 통해 외르크가 가지 못했던 인생의 또 다른 길을 그려볼 수 있으나 외르크에게는 20여 년간을 감옥에서 수감된 뒤 풀려난 후, 현재 아들에게 비난을 들으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지금의 삶이 그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외르크는 감옥에 있는 동안 친구의 밀고로 자신이 잡혔다고 생각하며 그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지금 외르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누나 크리스티아네와 아들 페르디난트 그리고 친구들이다.
크리스티아네는 동생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 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동생을 면회 다니며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면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 믿는다. 그러나 외르크는 누나의 곁을 떠나 홀로 살아가며 아들의 곁으로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외르크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숲을 산책하며 숲 냄새를 맡고 선루프와 차장을 모두 열고 프랑스의 시골길을 달릴 것이며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파스타와 와인을 먹으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그리고 페르디난트가 허락한다면 아들과 함께 이 모든 것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