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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십각관의 살인'은 외부 세상과 단절된 츠노시마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십각관의 살인'과 같은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은 경찰들의 활약은 미비하지만 탐정의 활약은 대단하다. 보통 모든 사건이 완료된 후 경찰들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사건의 진실을 모두 알게 된 탐정의 도움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누가 탐정의 역할을 맡은 것인지 그 존재감이 희미하다. 우선은 츠노시마 섬의 십각관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곳에서 묵게 된 K대학의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들이 머리를 짜내어 범인을 밝혀내려 애써 보지만 기꺼이 탐정 역할을 맡은 엘러리조차 그 자신도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그가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육지에서 청옥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관련한 일을 알아보고 있는 시마다와 가와미나미, 모리스가 있다.
십각관에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마다가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살인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징조를 느꼈다면 배를 내어 이 섬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랬다면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활약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츠노시마 섬을 바라보며 청옥부에서 벌어진 사건만을 파헤치는 그를 보면서 그와 가와미나미 그리고 모리스의 역할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러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엘러리나 그의 동료들이 기꺼이 탐정 역할을 맡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살해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냉철한 판단을 하는 사람은 엘러리와 포 두 사람 뿐이다.
'네놈들이 죽인 치오리는 나의 딸이었다'고 적힌 편지를 발견한 가와미나미는 이 편지가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들이 츠노시마 섬으로 들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여 무작정 나카무라 코지로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시마다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시마다는 이번 일로 뜻하지 않게 청옥부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일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며 십각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흐름은 그와 가와미나미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같은 편지를 받은 가와미나미와 모리스에게는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십각관으로 가게 된 사람들에게만 해가 끼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살인범은 치오리가 죽던 날 술자리에서 도중에 자리를 뜬 모리스와 가와미나미에게는 살의를 느끼지 않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반년 전, 4중 살인이 벌어졌던 섬으로 유명한 미스터리 작품의 작가들의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며 방문한 일곱 명에 의해 이곳은 그들의 지적활동의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처참하게 살해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방문한 것이 아니었기에 올치, 엘러리, 아가사, 포, 반, 르루, 카 이들이 이 섬에 오기 위해 배를 탄 순간부터 그 불길함은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영화였다면 어둡고 음침한 음악이라도 들렸을 것이다. 무인도에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육지에 있었던 시마다는 외부와 단절된 십각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마다, 그의 역할은 범인을 경찰에게 인계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까지만 알게 되는 것이었으며 그 진실은 시마다가 아닌 범인의 고백을 통해 듣게 된다. 시마다가 활약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가와미나미와 시마다와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