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에 등장하는 화가인 '나'는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 유부남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지금의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열정적이지 않다. '나'는 이런 관계를 정리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죽음'만을 떠올린다. 기르던 개 줄리앙의 죽음, 부모님의 죽음, 부모님과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들. 결국에는 그녀 자신의 죽음도 떠올리게 되지만 이마저도 아이처럼 보호받는 현재의 사랑에서 벗어나 타인과 동등한 자격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깨어나는 의미를 가진다.   

 

그녀에게 웨하스는 행복을 상징하고 사랑은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오직 그녀에게만. 나에게 웨하스와 사랑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린 시절부터 '절망'이 따라다닌 '나'에게 현재의 외로움을 떨쳐내지 못할 기억할만한 사건이 있었던가. 동생이 태어나던 날 차 안에 있던 개와 자신이 동족이라는 것을 느낀 일?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위기감은 아니었다.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느껴야 하는 감정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핑크빛 사랑조차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해야만 하는 일도, 규범도 왜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일깨워야 할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절망은 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몰고 오고, 사랑하는 사람의 품안에서조차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불륜때문은 아니다. 평범한 사랑을 했어도 그녀는 결코 평범하게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꼬꼬맹이 여동생의 사랑도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두 여자 사이에서 오고가는 애인을 왜 끊어내지 못하는 것인지 사랑이라는 거 참 어렵다. 그런데 동생의 애인만 '나'에게 찾아오는 경우는 뭐란 말인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가는 그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일까. 절망을 매개체로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일까. '웨하스 의자'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나'의 사랑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겪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죽음만이 모든 것에서 놓여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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