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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진 살인사건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나는 것은 좋으나 그를 만나려면 '사건'이 생겨야 하니 이 아이러니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혼진 살인사건],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흑묘정 사건]을 통해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났지만 어느 것 하나도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 사건이 해결되고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니 다행한 일이긴 하지만 한 번에 세 건의 끔찍한 사건을 봐야 하는 나는 계속 마음이 복잡하고 찬바람이 부는 듯 쓸쓸하다. 아마 [혼진 살인사건]에서 혼례를 올린 첫날 밤에 죽은 가쓰코 때문일 것이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살해 당하다니, 마음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가쓰코의 숙부 구보 긴조가 있긴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목 놓아 통곡해 줄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더 가슴 아파서일 것이다.
[혼진 살인사건]은 구보 긴조가 가쓰코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친분이 있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불러와 사건을 해결하긴 하지만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죽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자존심이 한 여자의 죽음조차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 정도로 그리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때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이치야나기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들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 사건에는 진실성도, 마음도, 희노애락의 감정도 느낄 수가 없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결정을 내리고 계획하여 만든 무대로 보여질 뿐이다.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에서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전혀 없어 아쉽긴 하지만 '복수'라는 이름 아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이는 가족사에 얽힌 사건이라 긴다이치 코스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저 재수사를 위해 이 사건을 맡게 되었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졌기에 자신은 더이상 할 일이 없어 물러난다. [혼진 살인사건]에서도 [도르래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에서도 이 사건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범인이 누구다'라고 딱 잘라 말하고 사건을 해결해 버릴 수 없는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살아있는 자들의 아픔과 슬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얼굴 없는 시체의 공식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흑묘정 사건]은 다른 생각은 할 틈도 없이 정신 없이 빠져들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맡게 된 이 사건은 그가 자세한 설명을 해 줘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사건이었다. 범인의 입장에서 좀 더 디테일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아쉬운 점이 있지만 뛰어난 활약을 한 그로 인해 범인이 자신을 죄여오는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 했을테니 긴다이치 코스케가 연극적인 행동으로 사건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해결되긴 했을 것이다.
긴다이치 코스케, 그의 뛰어난 실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언제나 사건은 끔찍하고 그 죽음은 슬프고 가슴 아프다. 여전히 기괴한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고 긴다이치의 코스케의 활약이 필요하겠지만 그도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여인을 만나 사랑도 하고 가족을 만들어 지금보다 안정된 생활을 한다면 사건을 바라보는 모습에 좀 더 마음이 담기지 않을까. 늘 사건이 터지고 범인을 밝히고 나면 그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는데 그의 삶에도 변화가 생겨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해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