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지를 벗고 밖으로 뛰어나간 안톤이 15분도 채 되지 않아 뛰어 들어왔다. 그래서 안톤의 고민이 해결되었다는 거야, 아니란 거야? 뒷장에 갑자기 그림이 등장하니까 이야기가 끝난줄 알았다.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 줄 알았더니 "바람이......멎었어요"라고 말하는 안톤때문에 풋, 하고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좋아, 첫 단편 [남동풍]부터 실망시키지 않는군.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밸프레드는 안톤에게 철학적인 말을 던진다. "여자랑 마찬가지야. 믿고 기대하면 안돼" 뭐냐, 이것이 멈춰버린 바람에게 하는 말이란 말인가. 역시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평범한 존재들이 아니다.  

 

문명 세계를 '저 아랫것들이라 부르는 괴짜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엮어 놓은 '북극 허풍담'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사냥을 조금 하고 과거의 기억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극야'의 시간을 홀로 보내다 외로우면 다른 사람을 방문하는 삶을 보낸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우리들이 문명 세계를 살아간다고 '저 아랫것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괴짜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계사의 본보기>라고 주장하는 비요르켄도 있지만 이 괴짜 사냥꾼들의 마음 속에는 온통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꽉 들어차 있다. 자신들이 내버려두고 온 문명 세계를 여전히 떠올리고 그리워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온통 눈과 빙산, 1년의 반은 밤이고 반은 낮인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문명 세계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면 왜 그들은 문신 예술가 요엔손 씨가 왔을 때 힘들게 모은 재산들을 선뜻 내어놓고 몸에 문신을 새겼을까. 빌리암은 엄마를 보지 못했지만 문신을 새겨 엄마를 갖게 되고 비요르켄은 꿈틀거리는 용을 등에 새기며 즐거워 한다. 아직 이들은 완전하게 문명 세계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하긴 그 누가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매스 매슨이 만든 가상의 차가운 여자 '엠마'는 빌리암과 비요르켄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실체가 없는, 머릿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일 뿐인데 매스 매슨의 입에서 사과 도넛을 닮은 '엠마'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녀는 핑크빛의 아름다운 여인이 된다. 빌리암이 사랑하는 엠마는 매스 매슨이 말한 엠마와 다른 사람일 것이며 비요르켄까지 그녀에게 반했다고 하지만 분명히 그의 마음속에 있는 엠마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엠마를 갖고 싶은 빌리암과 비요르켄이 자신들이 가진 재산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모습은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의구심을 가지게 하지만 이들은 꽤 진지하다. 내가 어이없어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 정말 순진하구나, 이렇게 단정해 버리면 큰일난다. 괴짜 사냥꾼들을 훈련시키려는 한센 중위가 어떻게 되었는가. 구덩이에 갇혀서 고생하고 사냥이나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지 않던가.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고 불편함을 주거나 문명 세계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면 이렇게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얄의 죽음에 슬퍼하기 보다 '좋은 사람이었지' 회상하며 죽은 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사회 규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북극의 그린란드 북동부에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외진 곳에 가야하지만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있고 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면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 그러나 화장실을 갖는다는 것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결코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괴짜 사냥꾼들이다. 문명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그들은 결코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유쾌한 이들의 이야기가 갑자기 공포소설로 바뀌는 것은 뭔가. 그래서 올슨이 크리스마스 때 뭘 잡아 먹었다는 거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외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정신을 놓아버릴 수도 있는 힘든 일인데, 그들이 계속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북극 허풍담'을 계속 읽으면 얻을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역시 화장실 문제와 먹는 것이 해결되어야만 겨우 이곳을 방문할 생각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이곳의 매력에는 또 뭐가 있을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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