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제
츠네카와 코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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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보고 있어도 아지랑이때문에 모든 것이 흐릿한 줄 알았다. 아지랑이도마뱀 같은 것일까. '초제'에 담겨진 다섯 편의 이야기는 나에게 낯선 느낌보단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을 전해주었다. 짐승의 들판 같은 무서운 곳이 있어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 비오쿠는 나에게 그랬다.

 

'초제'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간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내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한 소년이 마을에 풀어 놓은 쿠사나기에 의해 폐허가 되고 탓페이, 코헤이 쌍둥이와 오야붕이 있는 텐게의 집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짐승의 들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 소년의 숙부가 10년 만에 봤다는 선홍빛과 주황, 노란색 줄이 있는 여덟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오로치바나'가 나의 눈에 자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음산한 기운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사람들 곁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는 오로치바나로인해 이곳이 비오쿠임을 느낀다.  

 

다섯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탓페이, 코헤이 쌍둥이와 배불뚝이에 약간 파마기를 띠고 있는 머리를 한 오야붕은 이들이 비오쿠에서만 살아가며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자와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쇼타까지 이들은 결코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만 같으며 이로인해 각 단편들이 불가사의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무섭지는 않으며 오히려 아련함을 느끼게 한다.  

 

오사후네가 만든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그림자들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토해 놓은 기억들로 나에겐 다른 세상의 일인 것만 같다. 그러나 카나에의 눈에만 보이는 괴물 노라누라는 '짐승의 들판'에서 살아가는 괴물이 된 하루보다 더 현실적이다. '텐게'라는 게임을 통해 모든 괴로움을 벗어 던질 수 있다면 '무'의 상태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기묘한 일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나는 유카가 아홉 번의 텐게 게임을 한 후 정말 고통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고 죽을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려나 상관없는 일이다. 번뇌와 고통 없이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오사후네가 쿠사나기를 먹은 후 무엇으로 변했을까, 정말 쿠사나기가 존재하긴 했던 것일까에 대해 더이상 궁금하지 않은 것은 비오쿠가 내게는 잠시 스쳐가는 꿈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정녕 비오쿠를 본 사람이 있을까. 있다해도 이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오사후네가 만든 마을에서든 비오쿠의 어느 곳이든 어디에서든 결코 빠져 나오지 못했을테니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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