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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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위풍당당'이 피가 섞인 온전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었기에 읽을 수 있었다. 아니,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한 울타리로 감싸인 곳은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가족사에 얽힌 사건들이 꽤 많음에도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태에 이르러서야 세간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만큼 폐쇄적인 것이 이유이며, 행복한 일상을 가꾸어 가는 가족들 역시 타인에게 그 영역을 드러내거나 내어 놓지 않으므로 그저 무심히, 담담하게 지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었지만 가족이라 멋대로 이름 붙인 것 뿐이었던지 정묵이 보스로 있는 조폭들이 강마을에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영필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기거하는 이들을 '가족'이 아니라 했다. 이들이 기거할 터전을 지킬 필요가 있고 새미와 준호가 나중에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조폭인 세동이 새미와 준호에게 당한 사연은 뻔하다. 아름다운 새미를 어찌 어찌해 보겠다는 음심을 품어서였는데 현실적으로 조폭이라면 응당 이런 짓을 할 만하다. 그러나 세동의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한 새미와 준호의 행동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세동의 보스 정묵과 그의 부하들이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강마을에 나타날 정도로 사태는 점점 위험해진다. 아름다운 꽃은 그냥 두고 보는 것이란 철학을 가진, 아니 보스는 당연히 이러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근엄하게 앉아 있던 정묵이 새미가 눈 앞에 있었을 때도 얌전하게 있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면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 정묵에겐 이미 새미는 안중에도 없다. 다만 자신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강마을로 쳐들어갈 수 밖에 없음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정묵은 예전에 비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중얼중얼 거리며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고 부하들과 함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익살, 재담, 해학이 가득한 성석제의 작품을 읽을 때면 언제 웃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있다. 가슴이 뭄클하며 뭔가 끓어 오르려고 하는데 웃음이 난다. 이럴 땐 흠흠, 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행동하나 어쩔 수 없이 정묵이 세동의 똥을 밟았을 때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지금 웃어도 되는 건가 조심스러워지지만 도저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럴 땐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을 수 밖에. 그나저나 강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되려나. 살인이라도 저질러 감옥에 가거나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자못 심각하다.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한데도 이 상황이 왜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지 속에서 뭔가 간질간질 터져 나오려고 한다. 참 난감하다.   

 

조폭들이 몰려오는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의 삶에 무심한 듯 살아가던 강마을 사람들이 몇 잔의 술에 의해 취기에 의해 마음을 열어간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를 휙휙 던져 버린다. 읊조리듯 이어지는 강마을 사람들의 삶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친다. 여산, 소희, 이령, 영필, 새미, 준호, 이들은 이곳에서만 숨을 쉴 수 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서로가 마음을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강마을 사람들에게 조폭들과의 싸움은 그 계기가 되어줄 뿐 지금 이들이 가족이 되었다고 단언할 순 없다. 그런데 여산과 정묵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준호의 입에서 "아와삐이! 아와빠이!"가 터져 나오는 순간 강마을 사람들은 피보다 진한 끈끈한 것으로 연결된다. 새미와 준호에게 엄마, 아빠가 생기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이제 '위풍당당'에서 작가 성석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조폭들과 강마을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선사하는 것 뿐이다. 계속 이어질 삶은 강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할 터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간을 제외한 숲에 사는 생명들은 이 일에 무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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