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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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한 히무라의 고치는 '필드워크', 아리스의 고치는 '미스터리라는 추상적인 세상'이다. 그럼 나의 고치는 무엇일까. 주얼리 브랜드 사장 도죠 슈이치의 살인 사건을 다룬 '달리의 고치'를 읽으면서 이렇게 철학적인 사색에 빠져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도죠 슈이치가 평소에 자주 이용했다는 프로트 캡슐때문에 이런 철학적인 질문이 던져졌지만 실상은 살인사건일 뿐이다.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 이 사건에 함께 뛰어 들었으니 범인이 누구인지 꼭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46번째 밀실'에서와 같이 아는 사람이 사건에 엮어 있다는 것이 아리스의 냉철한 판단을 방해한다. 감성적인 면을 보이는 아리스와 냉철한 사고를 하는 히무라 두 콤비의 활약은 이렇듯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사건을 해결하지만 사실 히무라 한 사람만으로도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46번째 밀실'은 트릭을 밝혀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쓰게 한다. 히무라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달리의 고치'에서는 살해 동기가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통해 범인 가까이에 다가가게 되어 사건이 벌어지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까지도 히무라의 활약은 미비하다. 도죠 슈이치를 살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는데 경찰들이 파고들수록 살해 동기를 가진 이들은 의외로 많다. 유산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이복 형제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도죠 슈이치를 죽였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분명 이 중에서 범인이 있을테지만 몇 사람 되지 않는 속에서도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달리의 고치'에서는 '46번째 밀실'에서와 같이 살인사건을 억지로 만든 듯한 느낌은 없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도죠 슈이치가 살해된 동기에 대해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46번째 밀실'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문제는 단순했다. 밀실 트릭이 들어간 '46번째 밀실'은 잡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살인을 저질러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완전 범죄를 꿈꾸고 이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음에도 허술하기만 했다. 계획만 요란해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히무라만 없었다면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없었다면 범인을 밝혀내는 데 꽤 애를 먹었을 것이니까. 결국엔 유능한 경찰들이 범인을 밝혀냈겠지만 여러 가지 의문점을 해결하기엔 그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우연이라 하지만 갑자기 발견된 흉기와 신발들은 솔직히 히무라는 흉기가 발견된 것이 우연이라 믿는다고 했지만 급조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그리 자연스럽진 않다. 그러나 이것으로 사건이 빨리 해결될 조짐을 보였으니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이라도 있어야 경찰들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니 결코 불필요한 장면은 아니다.

 

도죠 슈이치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달리 수염은 왜 잘려 나간 것일까. 도죠 슈이치가 벗어 놓은 옷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신발은 왜 사라진 것일까. 이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데 사건이 해결되면 의뢰로 간단하게 정답을 알 수 있어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이 사건의 진실은 간단하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더 충격적일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달리의 고치'는 살인 사건보다 "당신의 고치는 무엇이냐?"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받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라 한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빨리 잊혀진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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