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남들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파스칼린이 연쇄살인범에게 첫 번째로 살해 당한 안나의 집에서 살게 되며 안나가 살해 당할 당시에 겪었던 고통을 벽을 통해 느끼는 것이 계기가 되지만 이미 그녀는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이나 불행의 흔적을 간직한 장소를 통해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집을 찾아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모아 정신병원에 보내 버려야 된다고 소리친 사람의 의견을 공감한다고 할까. 그녀에겐 나도 철처히 타인일 수 밖에 없으므로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살인범과 로베르를 동일시 하여 그의 목을 조를 때부터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범들에게 희생된 여자들의 집을 찾아가는 것이 결코 추모로 보이지 않았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되니 처음부터 그녀의 모습이 이해되었다고 할 순 없지만 로베르에게 한 행동은 그녀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계기로 보여진다. '영아 돌연사'로 딸을 잃고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져 이젠 이혼까지 하게 된 상황에서 파스칼린은 그녀의 삶에서 점점 위태로운 길을 걷는다. 갑자기 회사에 엄청난 거짓말을 하게 되고 프레데릭마저 연쇄살인범과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러 그녀의 다음 행동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혼녀 파스칼린은 전남편 프레데릭을 찾아가 어떤 행동을 했을까. 벽이 기억하는 아이의 아픔을 느껴보고자 했을까. 아니,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웃음 뒤에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니까. 프레데릭의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을 하기 위해 방문했거나 그를 어찌 해 보려고 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떠올리는 상황이 참 답답하긴 한데 작가가 의도한대로 그녀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나는 이렇게 모호하게 결말을 맺는 것이 싫다.   

 

어느 장소나 생과 사는 함께 공존하고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계속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벽이 기억하는 것들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상념은 버린 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파스칼린이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벽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는 것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나 자신의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않는 그녀에게는 도저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녀가 행동하는 모든 것, 선택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파스칼린, 그녀가 한 것이니까.

 

타인이 당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아파하는 파스칼린의 모습을 다르게 접근하여 다루었다면 좀 더 나은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을텐데, 파스칼린이 변해가는 모습을 이렇게 다룰 수 밖에 없었는지 아쉽다. 교도소를 돌며 연쇄살인범을 가둬두려고 한 그녀의 모습을 발전시켜 좀 더 깊이 있는 작품을 그려낼 순 없었는가,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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