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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뮤직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5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늘 목숨의 위협을 받고, 같은 경찰 동료들에게조차 견제를 받아야 했던 해리, 그가 이번 시리즈 '트렁크 뮤직'에서도 다르지 않은 상황을 맞이 하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평온한, 예전과 달리 몸에서 힘을 뺀 해리 보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헐리우드 경찰서 살인전담팀으로 복귀하여 팀장으로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해리 보슈의 모습이 낯설어서일까. 독자인 나도 긴장을 풀고 해리 보슈가 가는 길을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다. 시리즈의 특성상 등장인물은 그대로이고 사건만 달라지기때문에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아 딱히 감상을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이 그러했다. 해리에게 덮쳐오는 큰 위험을 느낄 수도 없고 작은 위협조차도 해리가 무난하게 해결해 버리는 '트렁크 뮤직'은 그다지 나의 감상평 같은 건 필요치 않아 보인다. 그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물론 이번에도 해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어 사건을 빼앗길 지경에 이르고 목숨의 위협도 받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겪은 일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어서 손으로 가볍게 휘저어도 해결되는 수준이라 큰 긴장감을 선사하지 못한다.
'트렁크 뮤직'이 해리 보슈 시리즈에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자동차 트렁크 안에 죽어 있는 시체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해리 보슈가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때문이다. 이는 해리에겐 꼭 필요한 사건이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막에 자리한 듯 쓸쓸해 보이는 자동차를 보며 느낀 감상이 책 내용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좀 더 흥미로워지지만 트렁크 안에 들어 있던 남자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은 그냥 해리가 평소 업무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일상사 같은 것이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에드거, 새로 발령 받은 여형사 라이더와 함께 3인 파트너 체제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해리, 이제는 안정을 찾을 수 있겠다 생각했으나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사건들을 잊은 것은 아닐테지만 늘 잘 이겨왔었고 잘 버텨왔었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모두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해리의 곁에 그동안 여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건만 마음 속에 늘 한 사람만을 그리워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해서 해리가 '그녀'(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밝히지 않는 게 좋을걸? 책 읽는 즐거움이 없어지니까.)를 만났을 때 헤어지기 싫어하고 자신의 곁에 두려고 애쓰는 마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독자인 나한테까지 자신의 속마음을 숨겨왔었던가. 그정도로 외로웠나 생각하니 나의 마음까지 쓸쓸해진다. '그녀'와 함께 하면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또 반복할 수 있는데도 함께 하길 원하는 해리를 보면서 자신이 믿는 '정의'에 따라 행동하며 사건을 처리해 나갔던 그가 처음으로 인간 같이 느껴졌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중에 밝혀지는 진실들, 생각지도 못한 단서, 이를 이용하여 이번에도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해리 보슈, 이제 어떤 사건이든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사건에 임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왔던 위협들이 이제 '그녀'에게도 다가오게 될테니까. '아이 낳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함께 잘 살았습니다'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제발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길에 큰 위험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