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굴레 - 경성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경성탐정록 2
한동진 지음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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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탐성록'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설홍주가 살아가는 시대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 간 듯 하다. '피의 굴레'에서도 설홍주는 무능한 레이시치 경부를 대신해 몇 건의 사건을 해결한다. 경부의 무능함으로, 또 식민지 시대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묻혀버린 사건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봤을 것인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정황증거뿐인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것을 해결하고, 사소한 증거라도 그냥 넘기지 않는 그에 의해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는 등 '피의 굴레'에서도 설홍주에 의해 네 건의 사건들이 해결된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을 설홍주는 아주 쉽게 해결해낸다. 스스로도 말하지만 아주 똑똑해서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모든 퍼즐을 독자들과 공유하지 않은 채 마지막에 사건의 핵심을 모두 이야기해주는 방식은 독자들을 답답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현 시점의 시각으로 볼 때 설홍주의 추리에 의존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밝혀낸다는 것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데 저자 한동진은 범인과 대면하여 증거를 제시하는 설홍주의 모습을 진중하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설홍주는 '정의'의 기준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그가 허용하는 '정의'의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라고 질문하는 것이 맞겠다. 단편 '피의 굴레'에서 설홍주는 냉혹한 모습으로 범인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 반전이라도 숨겨져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건만 역시 그에겐 예외란 존재하지 않았다. 왜 단편 '안개 낀 거리'에서와 달리 단편 '피의 굴레'에서는 범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은 것인가. '안개 낀 거리'에서 살해된 사람이 극악무도한 자고 그를 죽인 범인이 조선인이라서 자비를 베풀었다면 '피의 굴레' 또한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다.

 

범인의 행동까지 예측했던 설홍주는 '피의 굴레' 사건을 꽤 냉혹하게 처리한다. 자신이 풀어낸 사건의 확인을 위해 탐정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닐텐데 늘 자신은 경찰이 아닌 탐정일 뿐이라고 밝히며 범인의 자백을 유도하며 판사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른다. 살해된 사람들의 억울함이야 모두 같을터 살해된 이가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고 해도 범인을 대함에 있어 그 처리는 같아야 함에도 설홍주의 '정의'는 사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단 네 편의 단편들만이 담겨져 있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경성탐정록'의 후속작인 '피의 굴레'는 그 작품성이 전작보다 뛰어나다. 설홍주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똑같으나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범인의 시각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단편 '외과의' 같은 글을 만난 것이 즐겁다. 설홍주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왕도손에 의해 씌여진 많은 글들이 셜록 홈즈를 연상케 하여 (물론 설홍주와 왕도손의 관계가 홈즈를 모습을 닮고 있긴 하지만) 불편했기에 범인의 시선과 설홍주의 시선을 교차하여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은 독자들을 즐겁게 만든다. 설홍주 시리즈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한데, 지금보다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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