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3 아서 왕 연대기 3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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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초속계로 떠난 이들을 뒤로한 채 산쉼 주교가 있는 수도원에서 데르벨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고통스런 기억이며 왕이며 평생의 친구였던 아서에 대한 이야기다. 현존하는 사람들에게 '아서'는 영웅으로 기억되며 지금까지도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으나 아서의 곁에서 목숨을 걸고 적들을 베어 넘겼던 데르벨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케인윈이 준 금 브로치 뿐이다. 이마저도 산쉼 주교의 눈에 띈다면 당장 빼앗기고 말 물건이다. 금 브로치를 제외하고는 데르벨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죽기 전에 아서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글이 온전하게 세상에 빛을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그레인의 명으로 다비드가 멋지게 각색할 것이므로. 다행한 일이라면 조그만 땅을 일구며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던 아서에 대한 이야기는 이그레인을 제외하고 우리들만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모르는 산쉼 주교가 데르벨이 아서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지 계속 의심하지만 알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우리들은 데르벨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으로 왜 데르벨이 선택되었을까. 색슨족이지만 브리튼 사람이 되어 서약에 따라 브리튼을 수호하게 된 데르벨, 그 자신은 평범한 전사였으나 아서와 약혼했던 포위스의 공주 케인윈과 부부가 된 행운의 사나이다. 아서 못지 않게 굴곡 많은 인생을 산 데르벨이기에 그냥 역사 속에 묻히기엔 아까운 존재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출생의 비밀 같은게 드러나는 것은 좀 의외였다. 앵글인의 왕 '엘레'가 아버지라니, 아버지인줄도 모르고 칼을 맞대고 싸웠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서늘하게 했을까. 케인윈이 데르벨을 '왕자'라고 부르니 갑자기 동화 속처럼 왕자와 공주가 부부가 된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색슨족과 브리튼족 사이에 놓인 데르벨의 처지는 꽤 외로웠을 것이다. 엘레 곁에서 자랐다면 아서의 반대편에서 그에게 칼 끝을 내밀었을테지만 운명은 그를 아서의 곁에서 아버지에게 칼 끝을 겨누게 만든다. 아니 아서가 데르벨을 선택하고, 곁에 둔 것이라 하는 게 맞겠으나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홀로 과거를 회상하며 아서의 이야기를 쓰는 그의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산쉼 주교 밑에 있으니 더 외로워 보인다.

 

모드레드가 아닌 아서가 둠노니아의 왕좌에 앉았다면 지금과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산쉼 주교가 모드레드 왕을 부추겨 아서와 데르벨을 위험속에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데르벨의 딸 디안이 죽지 않고 가족 곁에서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모드레드 왕에 대한 서약, 둠노니아를 지키겠다는 서약, 서약, 서약, 서약. 그놈의 서약을 지키자고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트리스탄과 이죌트 역시 아서가 그렇게나 강조하는 서약때문에 희생되었지만 작위 없는 유서의 서자 아서에게는 왕좌에 앉아야겠다는 욕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이것이 법이요, 정의였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서에게 진정 왕좌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까 의심이 가지만 귀니비어를 사랑한 그에게 다른 마음은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권력과 왕좌에 욕심을 낸 귀니비어가 아서를 버리고 란슬롯을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왕'의 자리때문이었으니까.

 

멀린과 니무에가 브리튼의 열세 가지 보물을 모아 신들을 소환했다면 브리튼에 평화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멀린의 말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브리튼 사람들에게 다른 삶이 주어졌을 것이다. 아니 아서의 삶이 달라졌을지도.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마이 뒨에서의 의식을 끝까지 마쳤다면 이교도들에게 희망이라도 주었을 것인데 의식을 깨뜨린 아서는 기독교도들뿐 아니라 이교도들에게까지 적이 되었다. 브리튼 보물을 향한 니무에의 광기, 모드레드의 음모, 색슨족과의 전투 등 이 모든 것이 아서가 더이상 소박한 꿈마저 꿀 수 없게 해 버렸다. 전투에서는 물러섬이 없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여 서약을 지키고자 노력 했으며 목숨을 바쳐 함께 싸운 동료들을 아낀 아서, 이제 역사속에서 그 이름을 남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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