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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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 나의 앞에 있는 눈빛이 맑은 아주, 아주 예쁜 여자가 나에게 한 말은 이것이 전부다. "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익숙한 단어들이 소리가 되어 뱉어지질 않는다. 마음 속으로는 그 찰나에도 '영혼이라고 했는데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읊조릴 뿐. "아, 그러세요. 저는 누구입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나에게 전혀 관심도 없는 그녀를 향해 나 자신을 이렇게 내세우고 만다. 영혼을 기록한다니, 분명히 나보다 특별한 사람인데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평범한 내가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진은 죽은 영혼의 삶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살아있는 영혼을 기록한다. 그녀의 하루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 왔음에도 불구하고-영혼을 직접 눈으로 본 적도 없으면서-살아있는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그녀에게 온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녀가 기록해 놓은 수많은 대학노트를 손으로 쓸어보면서 펼쳐 보고 싶은 욕망과 싸우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이 노트를 펼쳐본다고 해도 믿을 것인가. 그녀가 들려주는 몇 편의 이야기로도 오롯이 그녀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갑자기 그녀의 눈에 빨려들어 갈 듯 꼼짝하지 않고 앉아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나의 육신은 어디있지? 분명 이곳은 아니었는데. 직접 들려주지 않았는데 이진, 그녀가 나의 영혼을 통해 나를 기록한다. 어떻게 내가 기억하는 삶을 기록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진이 찍히듯이 장면, 장면 그대로 박혀 있는 기억들은? 이는 그녀에 의해 내가 주인공으로 있는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뿐이다. 작가 심윤경의 손에 의해 이진이 탄생했듯이, 이진이 영혼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가 심윤경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이진의 손에 의해 나의 모든 것이 글로 기록되고 있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글에 의해 형태를 이루고 모습를 갖춰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억들이 글로 기록 되어지는 순간 순수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테니까.  

 

이진과 다르게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을 사랑하는 이현의 이야기는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현실의 일들이다.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한다고 외면해도 될 일을 그는 이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여섯 살 어린 시절 처음 보고 사랑한 그녀와 완전하게 닯은 이진-딸이니 당연히 닮겠지만-을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요, 숙명일 수 밖에 없다고 자신했겠지만 처음 이진을 만나 먼저 결혼하자 말하고 뒤이어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의 사랑은 결코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차 애정으로, 사랑으로 변해가지만 이진의 아버지 이세 공의 말처럼 그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이현에게 지옥과도 같은 삶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던 그였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과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 이현은 처음부터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평범하게 살아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게 된 것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때문이었다. 오늘 밤만 지나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구미호처럼, 이진을 만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이현에게 사랑은, 이렇게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제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의 말대로 이진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써 그의 이름은 기록될 가치가 있고, 그에 의해 영혼을 기록한 그녀를 세상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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