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도 - 三惡島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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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까 오현정이 폐교 화장실 문 밑으로 본 사람의 발에 발톱이 없다고 했는데 혹시 그거 발톱이 빠진 것이 아니라 발가락이 잘린 거 아냐? 흠칫, 팔에 소름이 돋는다. 계속 읽을까, 말까 어두컴컴한 밖을 바라보다 기어코 책을 덮어 버렸다. 아직은 현정의 주위를 맴도는 실체를 오롯이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음 날, 날이 밝고 나서야 [삼악도]를 펼칠 수 있었다.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도 김종일의 [몸], [손톱], [삼악도] 등의 책들을 즐겨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이면 어김없이 하던 "전설의 고향"도 어린 시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보질 않았던가. 더운 여름날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해서? 아니다. 무서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끝까지 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괴물이 매일 밤마다 나를 찾아올 테니까. 무서움의 정체와 오롯이 마주하면 웃음이 피식 새어나올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기에 한 걸음의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삼악도]는 끝까지 오현정이 만든 환상이라고 둘러대고 싶을 정도로 섬뜩했다. 이 섬의 내부에 깊숙히 발을 들이민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설 곳은 없었다. 오현정 뿐 아니라 나도 이곳 삼악도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삼, 악, 도. 박광도 감독이 지 아무리 좋은 말로 꾸며서 이 섬을 표현해도 현정의 표현대로 이 곳은 아귀도, 축생도, 지옥도를 총망라 한 곳이다. 박광도 감독, 김 씨, 주희에 의해 '악' 소리가 세 번 나는 곳이라 생각해도 될 정도로 삼악도는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피비린내가 가시질 않는다.

 

김종일의 [삼악도]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닭의 목을 잘라 그 피를 받아 마시는 김 씨의 모습은 '전설의 고향'을, 감독이 "흡혈귀"의 3막을 서글프면서도 서늘한 결말을 창조해 내길 원하며 오현정을 묶어 놓고 고문하는 장면은 시대의 뒤처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현대물의 생생한 공포를 선사한다. 여기에 옛날 삼악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함께 어우러져 단발마의 비명도 지를 수 없도록 처절하고도 완전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이 모든 공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면 오현정이 삼악도에서 희생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섬을 탈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 뿐이다. 가위에 눌리며 꾼 거머리 꿈들이 그저 환상이라고 여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유로운 몸이 되어 탈출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 섬에서 구조대에 의해 치료를 받았던 장면은 유일하게 그녀가 이 섬을 탈출했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왜, 그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오현정에게 삽을 휘두른 김 씨의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 갔으며, 그녀가 다시 삼악도로 끌려 갔을까. 딸 같다며 현정에게 감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김 씨의 이야기에 띄엄띄엄 헛점이 많은 것처럼 오현정이 겪은 이 일도 나에게는 이해 할 수 없는 환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삼악도]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서글프면서도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했던 완전한 공포물이 민간신앙에 의존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보여주며 점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돈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계약을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 혈(血)자를 떠올리게 하는 삼악도는 시나리오 "흡혈귀"를 창조해내는 고통을 엄마의 자궁을 통해 아기가 탄생하는 숭고한 장면으로 승화시킨다. 삼악도는 더이상 거머리에서 나는 피비린내의 비릿함이 아닌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아기의 울음소리, 고통을 감내하며 아기를 세상에 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인의 호흡소리만이 들린다.

 

이제 오현정, 그녀가 새 육신을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옛 것의 소멸뿐이다. 삼악도에서만이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완전한 소설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가장 무서운 일일테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단 한 편의 소설을 창조해내기 위해서는 이곳에 갈 수 밖에 없다. 서글프면서도 서늘한 공포를 얻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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