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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등급 그녀
진소라 지음 / 예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아니 "행복은 등급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다. 왜냐구? 그러면 나도 그녀처럼 등급이 낮은 걸 들킬까봐. 그런데 솔직히 내가 고우신과 비슷한 등급이라고 말은 못하겠다. 고우신, 그녀는 너무 착하니까. 대책없이 착해서 딱 신데렐라다. 가족을 위해 순종하고 거기다 멋진 왕자님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산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데렐라와 다르다. 슬픔과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고 자신의 짝을 스스로 찾으니까. 그럼 신데렐라가 아닌 건가. 좀 헷갈린다. 어쨌든 이런 막장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맛깔나게 버무려낼 수 있다니, 하고 깜짝 놀라는 사이 사람들의 옷을 다리미로 다리며 삶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의 마음속까지 고우신으로 가득 채워지고 만다.
가족들 안에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고우신, 그렇지만 분명 그녀가 가족들을 왕따 시킨다. 상처만 주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니까? 아닐걸. 언젠가 그녀의 가슴에 켜켜이 쌓여있던 원망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을 것이란 승완의 말이 아니더라도 모질고 매정하게 엄마를 끊어내지 못하는 우신은 고훈이를 통해 가족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아니, 고훈이를 통해 엄마가 우신에게 한 걸음씩 다가온다. 고우신 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갈 법한 일들 투성이다. 드라마에 막장 소재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이는 이유는 아무리 막장 소재라도 그 끝에는 화해와 행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우신이 민준과 헤어지고 승완을 사랑하게 되면서 갑자기 이야기가 시시해지긴 하지만. 주인공이 멋진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진부한 멜로 드라마까지 더해져서 야!라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삶이 쉽냐, 이렇게 소설처럼 쉽냐고.
엄마의 결혼식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민준의 결혼식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려다 포기한 고우신 너 왜 그러냐, 라고 물으면 "죽는다!"라는 말을 듣겠지만 그녀의 행동은 꼭 "나 좀 봐 달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린다. 가족들에게조차 따뜻한 마음을 받지 못하는 그녀는 스스로 삶을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재고 따지는 감정 소모를 하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 고우신답다는 철학으로 중무장한 채 삶에 자신을 맡겨 버린다. 그러나 오히려 무장해제 당한 것은 승완이다. 검사가 된 민준이 고우신을 차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려 했던 승완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고우신에게 온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사랑'을 하며 살겠다고.
정말 멋진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닌가. 16부작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드라마속에 자주 등장하는 악인이 없다. 고우신의 엄마 신 여사? 아무리 나빠도 엄마인걸. 고우신을 버린 민준? 결혼하고 후회한 민준을? 승완과 고우신의 사랑을 계획된 것이라고 부르짖는 민준을 어찌 미워하라고.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갈 법한 일이 꼭 소설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살아보면 별 일을 다 겪을 것이다. 고우신 같이 멋진 남자를 만날 수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우신처럼 살다보면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기겠지. 그래서 삶은 멋진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