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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ㅣ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책 표지만 보면 누군가의 에세이 작품집 같은 느낌이 난다. 책 제목인 "회귀천 정사"의 '정사'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남녀의 동반 자살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일본 소설의 느낌이 나, 그 특유의 독특한 향기를 느끼게 한다. "회귀천 정사"에는 단편 다섯 편이 담겨져 있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꽃에 얽혀 있는 슬픈 사연들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을 떠올리면 벚꽃부터 생각나게 된다. 흩날리는 벚꽃, 하지만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 여인의 가녀린 두 손이, 길 가에 피어 있는 민들레꽃과 닮은 것 같아 첫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주저하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확 져 버리는 벚꽃이었다면 이렇게 주저하지 않았을텐데. 무릇 '꽃'이란 활짝 피었다가 스러져가는 존재이기에 그 화려함 뒤에 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이런 길을 걷고 있어 딱히 '꽃'을 떠올리면 '여자의 모습'과 함께 떠오르진 않으나 "회귀천 정사"를 읽은 후에는 이름 없는 여인들의 슬픔도 함께 떠오른다.
단편들 중 가장 슬픈 사연을 가진 이야기라면 [도라지꽃 피는 집]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한 단편 [등나무 향기], 조직간의 암투를 그리고 있지만 두 남녀의 슬픈 사랑도 함께 담고 있는 단편 [오동나무 관], 가슴 속에 많은 비밀을 간직한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단편 [흰 연꽃 사찰], 그리고 단편 [회귀천 정사]들 중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단편 [도라지꽃 피는 집]이 이 "회귀천 정사"의 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글일 것이다. 무엇이 이렇게 맹목적인 사랑을 하게 만드는가. 잠깐의 만남이 죽음도 두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니, 그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단편 [도라지꽃 피는 집]은 경찰들이 등장하여 살인사건들을 파헤친다. 그렇기에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확한 순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이외의 다른 단편들은 한 사람의 기억에 의해 들려주는 독백을 따라가게 되어 긴장감을 느낄 수 없다. 그저 누군가에게라도 자신의 가슴속에 담겨져 있는 슬픔들을 세상 속에 토해내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벌을 받았다고 해도 그 안에 남겨진 긴 여운을 좀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다. 꽃 향기에 벌써 취해 버렸나. 코 끝에 스며든 향기는 시간이 지나면 금세 떨쳐지지만 마음 속에 각인된 향기는 사라지지가 않아 어떤 마력에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
온통 죽음, 죽음들 뿐인 이 책속에는 꽃 향기만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뿐 다른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꽃들이 모두 활짝 피어났다 죽어 버린 것 같다. 가장 화려했던 삶이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젊고 아름다웠던 여인의 얼굴에서 주름 가득한 모습을 봐 버린 것 같다. 왜 이렇게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사랑의 모습이 있고 각각의 죽음에도 사랑이라는 다른 이름의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다. 가족들의 사랑, 연인들의 사랑 등 가슴 속에 한 가지쯤 사랑을 담고 죽어갔을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찌하면 될까.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말해줄까. 피었다가 스러지고 마는 것인 삶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텐데, 올해는 왜 이리도 봄이 추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