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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마주했을 때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외면해 버리면 그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날 재스퍼 존스가 찰리를 찾아온 밤, 찰리는 그 때 어른이 되었다. 제프리와 농담을 하며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도 이제 찰리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이제 세상까지 예전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로라의 시신을 보여준 재스퍼가 찰리에게 제안한 것은 누가 보아도(아니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면 다르겠지만) 그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시신을 은닉하자니, 호수에 로라의 시신을 던져 넣는 그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재스퍼가 아무리 로라를 살아있을 때와 같이 소중히 다룬다 하여도 이런 몸짓 하나, 하나에도 나는 연극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이 곳 코리건에서 온갖 나쁜 일에 재스퍼의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을 안 순간 그의 로라를 향한 의미 있는 행동에 가슴속에 슬픔이 차 올라도 나의 이런 감정 따위 로라와 함께 호수속으로 던져 버린다.
로라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재스퍼는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런 큰 사건에 아무리 침착하게 대응한다 해도 그는 아직 어리다. 진짜 범인이라 생각한 잭 라이어넬을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찰리와 재스퍼가 아직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배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냉혹하게 바라보는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재스퍼는 이미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곳의 냉혹한 시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혹여 모든 진실을, 모든 퍼즐을 맞추었다 해도 이곳을 외면하고 살아갈 용기가 있을까. 고작 이곳을 떠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은 있으니까.
미스터리, 성장소설 등 그 어떤 장르의 이름을 갖다 붙여도 이 책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가 진실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인 로라 뿐이다. 사회의 냉혹한 시선 아래 사람들의 손가락이 모두 재스퍼에게 향하고 있다 하여도 그도 로라가 당한 일에 대해서는 타인일 뿐이다. 물론 자신을 향한 온갖 편견에 대항하는 것은 재스퍼 몫이지만. 제프리, 찰리는 나름대로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버텨낸다. 찰리와 재스퍼가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세상을 함께 바라본다 하여도 겪어내야 할 고통은 다르다.
로라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로라의 죽음 이면에 감춰진 것들, 로라의 죽음과는 별개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결코 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오로지 자신들의 몫이다. 세상에 알릴 것인가, 외면해 버릴 것인가의 선택은 각 개인의 도덕성이 기준이 되지만 배타적인 시선을 보이는 이곳에서라면 그 어떤 선택을 하여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버리게 될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어보지 않아 이 소설과의 공통점내지는 다른 점을 비교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코리건에서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재스퍼가 진실을 버거워하며 외면했던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보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온 삶들이 보이기 시작할테니 이 시선을 견뎌내려면 몇 겹의 옷으로 몸을 감싸고 이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두꺼운 돋보기를 끼고 읽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