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3'이 아닐까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쓰리", 보통 우리들은 평소에 '쓰리당했다'라고도 쓰는데 아마 소매치기에 대한 글을 담아 놓았나 보다. 이 책 "쓰리"는 천재 소매치기가 등장한다해서 현란한 손놀림이 연상되는지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긴장감을 높이는 영화가 탄생되지 않을까 잠시 상상했었다. 소매치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분명 경찰이나 형사, 악의 무리인 야쿠자나 조폭들이 등장할터라 처음부터 끝나는 시점까지 스릴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왠걸 "쓰리"의 주인공 니시무라는 눈 앞에 보이는 탑을 외면하기 위해 노력하는(유년시절 도둑질을 한 자신에게 눈 앞의 탑이 무언가 말을 해줄 줄 알았다 했다.)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니시무라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물 중 이시카와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이시카와 보다는 기자키라는 사람이 니시무라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생명을 잡고 니시무라를 얽어 매고 있으니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자키'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타인의 운명을 정해주고 그 운명에 따라 그 사람의 죽음이 결정 지어질 때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다. 강도짓을 할 때도 완벽한 시나리오로 성공시키는 무서운 놈이다. 물론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밑에 부하들을 시키지만 이런 인물이 마지막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캐릭터일 것이다. 타인의 삶을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기자키, 이런 녀석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기자키는 니시무라의 삶에도 관여하기 시작한다. 그가 선택한 니시무라의 삶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결과가 무엇이든 '죽음'과 관련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쯤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기가 문제일 뿐 기자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하게 버려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니시무라 혼자 어디론가로 숨어 버리면 되겠지만 이제 니시무라에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니시무라는 결코 자신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 죽음은 죽음이되 그 죽음의 끔찍함이 어떨지, 결코 자신의 손으로 삶을 끝내지 않을 것이기에 타인에 의해 끝나게 될 삶의 끝이 궁금했다. 하지만 말이다. 이건 분명 "오래오래 이 눈부신 햇빛을 보고 싶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삶에 대한 마지막 의지는 결코 니시무라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