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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의 반어법 ㅣ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올가의 반어법'을 읽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 보다. 심장이 쿵쿵쿵쿵,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을 뜨니 다행히 꿈이었다. 한 낮, 햇살의 달콤함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꿈에서 깨어나자 마자 꿈 내용은 희미해졌으나 아이를 잃어버렸던 기억은 선명하다. 분명 나에게서 누가 아이를 떼어 놓았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모여있을 것이라 했지만 명단에 나의 아들은 없. 었. 다. 그 때의 선명한 느낌이란, 다시는 꿈에서라도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갈리나가 들려준 딸과 생이별을 한 알료나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었나 보다. 라게리에 들어와서 2년 만에 체포될 때 생이별을 했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발이 된 그녀의 심정을 모두 헤아릴 순 없겠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미된 마음으로 그녀의 감정이 가슴속에 깊이 박혀 나의 꿈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아직 읽지 않아서겠지만 '올가의 반어법'은 최근에 읽은 헤르타 밀러의 [숨그네]를 떠올리게 한다. 이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가게 된 열일곱 살의 레오폴트, 그는 하루 하루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치닫는 충격에 살아남는 것조차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시간에 놓여진 레오폴트의 모습은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된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언어로 인해 그의 삶에 덧입혀진 '희망'을 볼 수 있게 한다. 갈리나에게 올가는 '삶' 그 자체였다. 수용소 시절의 시간을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낸 레오폴트의 독백은 나에게 갈리나, 올가, 알료나, 엘레오노라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선연하게 그려냈고 그녀들의 삶 하나, 하나를 마음속에 켜켜이 쌓이게 했다.
'올가의 삶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파헤친 소설'이라는 '올가의 반어법'의 책 소개를 본 후 왜 나는 그녀의 죽음이 타살이며 죽음에 대해 파헤치는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미스터리'란 단어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탐정도 아닌 시마가 올가 모리소브나의 삶을 파헤치는 이유를 처음에는 짐작하기 힘들었었다. (탐정이라고 해도 노화로 죽은 올가의 죽음을 파헤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프라하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후 30여 년 가까이 지난 후에 올가의 삶을 파헤친다니 1964년 그 때 이미 올가의 나이는 70세가 넘어 보였으니 현재 올가는 죽었다는 결론을 가지고 그녀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것이 되는데 그럼 이건 거의 자서전 수준이 아닌가. 이유가 무엇이든 독자인 나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라 감사해야 할 일, 그저 시마의 꽁무니나 따라 다녀야겠다.
올가는 시마에게 무용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올가의 삶을 추적하며 미완성으로 남겨진 그녀의 삶을 완전하게 파헤치는 이유로는 부족하다. 올가와 엘레오노라가 '알제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며, 올가를 본 후 넘어진 미하일로프스키 대령의 죽음, 올가와 엘레오노라가 아이들이 오자 급히 감춘 그 '무엇', 시마의 첫사랑 레오니드의 아버지 코즈이료프 박사의 갑작스러운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어 이것이 시마를 자극한 것이겠지만 시마에게 올가는 무용수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준 사람이며 무용수에 대한 꿈이 무너진 후 러시아어 번역일을 하며 살아가는 단조로운 일상에 숨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존재였기에 기꺼이 시마를 러시아로 떠나게 했을 것이다.
'올가의 반어법'은 퍼즐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올가의 삶을 시마가 카챠와 함께 올가를 알고 있는 이들의 기억을 모두 모아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까지 그 여정을 담고 있는데 책 제목을 보면 올가가 늘 입에 담았던 문장의 반어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다. 올가의 삶 자체가 반.어.법이었다. 하나의 독립된 사건인것처럼 보이던 일도 알고 보면 모두 연관된 일이었음을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데 올가에 대해 조금씩 가지고 있는 기억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세상에 현존하는 각종 문헌과 기록들, 사람들의 머릿속에 담겨져 있는 기억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올가와 엘레오노라의 딸 '지나'가 있어야만 완벽한 올가의 삶을 완성해낼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인다고 해도 올가의 눈으로 보면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있을터라 그녀의 육성으로 직접 듣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아쉬운데 묻혀버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녀가 새로 태어날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할 이유들이 세상의 밝은 빛속에 드러났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는 "흥, 칠면조도 말이지. 생각은 참신하단다. 그래서 결국 수프 국물이 되어버렸지만"이라고 올가가 호통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읽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 '발명 마니아', '마녀의 한 다스', '인간 수컷을 필요 없어' 모두가 대단한 책이지만 '올가의 반어법'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가슴 먹먹한 여운이 계속 밀려오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엄지손가락을 위로 펼쳐 보이며 이 말을 외치고 싶다. "정말 대. 단. 한 소설이다. 이 책 괜. 찮. 다(이거 절대 반어법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