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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아니 꿈 속에서조차 늘 머릿속이 울리도록 고민을 하고 쉬어본 적이 없거늘 죽어서까지 선택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것은 정녕 끝이 아닌 것이다. 죽음이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와의 인연의 끝일 뿐이다. 죽은 자는 숨이 끊어져도 저승 이후 중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다. 저승차사가 된다? 환생? 영면? 더 이상의 환생이 없다면?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 동반되지 않으면 삶이 아니니까. 이승에 대한 미련으로 저승차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넋을 걷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승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면 그저 손에 움켜진 것들 놓아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넋은 아직 이승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므로.
쇳빛부전나비가 나의 눈 앞에 보이면 몸이 부들부들 떨려 정신을 잃을 지도 모르겠다. 전설의 고향에서나 보던 갓 쓰고 검정 도포자락 흔들며 넋을 거두러 오는 것이 아닌 쇳빛부전나비라니 어쩌면 나비의 아름다움에 빠져 저절로 발길이 떨어질지도 모르지. 허나 이승의 기억을 가지고 어디 그리 쉽게 따라 갈까 보냐.
화율, 이승에서는 이름이 우재였다. 그가 저승차사의 일을 거스르고 사랑하는 정인 징신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직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서다. 이승의 기억을 놓지 못하는 화율, 그가 죽음 너머에서 한 번 더 징신을 만나본다한들 무엇이 바뀔 것인가. 하지만 자신의 죽음 이후 징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징신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으므로 어쩌면 살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아 그저 말도 안되는 기대다.
염색장 채관, 연홍, 수강, 화율 이들의 인연의 고리는 어디서부터 연결된 것일까. 몇 번의 생이 이어지고 전생에서의 업이 현생에서도 풀어지지 못한다면 환생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이 될게다. 채관에겐 오랜 세월동안 찾아 헤맨 한 여인의 삶들은 모두 슬프다. 어디에서 이 모든 것들을 놓아 버려야 할까. 화율의 마지막 선택은 이들과 무관하지 않다. 화율을 알아본 채관, 징신을 눈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화율의 가슴앓이, 연홍의 정혼자인 수강, 이들의 인연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말이다. 화율의 마지막 선택으로 이들에게도 인연의 끝이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사랑이 인연의 끈을 결코 놓아버리지 못하게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