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 비단뱀을 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나의 반응은 어떠할까. 거기다 비단뱀을 칭칭 감고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까지 보았다면? 분명 처음엔 무서워서 피할 것이고, 멀리 떨어져서 그러나 비단뱀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마술이나 행위 예술을 하는 사람일지, 살짝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일지 헷갈려 하겠지만 가까운 지인에게 "비단뱀을 감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필히 알아두려 할 것이다. 혹 우리 집으로 넘어올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로칼랭은 비록 문은 열 수 없지만 어디든 이동이 가능했다. 그러니 내 말을 가볍게 웃으며 넘기지 마시라.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그로칼랭'이라는 작품을 이렇게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로칼랭'은 표면에 드러나기 원하지 않는 작가로 인해 쿠쟁처럼 철저한 고독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번에 출간된 '그로칼랭'은 오래전 출간 당시 삭제되었던 미공개 결말을 포함한 결정판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현대인의 고독감을 이렇게 잘 표현해 놓은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그로칼랭', 이 책을 읽기 전 쿠쟁의 상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고 첫 장을 펼치기를 바란다.

 

물론 나도 처음 책장을 넘기기 전 쿠쟁이 비단뱀을 기른다는 설정이 웃음이 날 정도로 가볍게 다가왔으나 비단뱀에게 먹이를 주는 일로 고민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갈구하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면서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오롯이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은, 그로칼랭에 의해 꽉 껴 안아진 상태(그로칼랭은 쿠쟁을 계속 잡아 먹으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집을 쩍 벌린 그로칼랭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라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이 있어도 외로운 적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쿠쟁은 두 팔만으로 자신의 온몸을 끌어 안아 보지만 비단뱀 그로칼랭이 포옹해주는 것만큼의 온기를 느낄 수가 없다. 홀로 살아가는 쿠쟁의 고독, 존재감 부재는 그로칼랭에 의해 비로소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쿠쟁은 짝사랑(결혼할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분명 짝사랑일 것이다.)의 상대인 드레퓌스와의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심각하게 비단뱀과의 동거에 그녀가 찬성할 것인지 고민하는 아주 아주 평범한 한 남자다. 혹자는 그가 평범하다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던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통계일을 하는 쿠쟁이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의 허무함을, 그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가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책의 결말 부분에 다다를수록 작품속에 정말 비단뱀이 존재했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이는 쿠쟁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다. 애정결핍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연구의 연구대상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이 쿠쟁 씨의 삶이 그가 무한한 애정을 담아 돌보는 비단뱀 그로칼랭으로 인해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