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니고 살아간다. 각 사람들마다 죽음을 맞는 방법은 통계상 몇 몇 부류안에 들어 가겠지만 개인이 맞이하는 죽음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해도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자살로, 아니 자연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조차도 그 죽음에 다른 이의 손길이 뻗어왔다는 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다. 사람들의 죽음을 구조조정 하는 회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악' 소리가 나게 충격적인 사실이 될 것이요, 들어 본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 회사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 사고사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의심스러우니 이 죽음들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깡패나 심부름센터를 통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 '죽음'을 소설속 상황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 회사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을 '컨설턴트'라는 명함을 만들어 양산해 내고 있을 것이며 어떠한 배신도 용납하지 않는다. 뒤에 회사가 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 기미라도 보이면 그 '컨설턴트'를 구조조정해 버린다. 그들이 이 곳에 발을 넣은 이상 죽을 때까지 충성해야 하는 것이 거액의 월급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책 속의 주인공인 '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만드는 작가다. 아니 처음에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오롯이 현실을 마주한 지금은 자신의 손에 의해 일 년에 몇 명씩 죽어나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심에 부대끼냐고? 물론 처음에는 괴로웠고 이것이 하나의 테스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뿐, 담배를 피우고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내며 이 양심마저 버려 버렸다. 그래, 이제는 내가 살기 위해 끝까지 가는 수 밖에 없다. 진실과 허상이 모조리 뒤섞여 버리는 때가 오면 이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온다. '나'가 처해 있는 현실은 모두 회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지만 이 허상을 깨부수기 위해 그가 한 일은 그저 콩고에 여행을 다녀온 것 뿐이다. 이도 잠시동안의 휴식(?)일 뿐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주인공 '나'가 죽게 될 때 그려지는 '죽음'은 어떤 것일 될까. 자살? 사고사? 회사에서 구조조정 대상으로 한 인물의 프로필을 보낼 때 '나'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주인공 '나'가 아닌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 땐 누구에게 억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컨설턴트' 이 책은 '제 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 신선함이 들어 있다. 하지만 주인공 '나'의 자기만족적인 삶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그의 삶에 교훈 따윈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런 삶도 있다고 알아달라고? 충분히 고뇌하고 있으며 괴로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인가. 이 책 속에는 '컨설턴트'인 '나'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타인의 죽음을 구조조정 하지만 그 타인들은 책 속에 존재하고 있으되 나의 눈 앞에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단지 '컨설턴트'의 삶을 알아보고자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장례식이 상품화 되고 있어 '죽음' 또한 상품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내가 잡을 수 있는 것은 없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