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자음과 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을' 책속의 등장인물들의 삶이 평범한 일상은 아닌데 책장을 넘기면 하품이 날만큼 단조로운 삶이 이어진다. '을', '민주', '프래니', '주이', '씨안'. 이들 다섯 명은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함으로서 한 장소에 머물며 서로 관계를 맺어간다.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 이들의 관계를 계속 살펴보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을 이 곳에 오래 머문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존재가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사랑, 복수 등 드라마 적인 아주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진 않은데 왜 이 소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길까. 등장인물 다섯 명의 관계가 마지막에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단조롭게 읊조리는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너무 조용하여 큰 사건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만 보고 이것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이야 그저 평범한 제목이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을'이 장기 투숙하고 있는 곳으로 '민주'를 부른다. 연인관계인가? 아니, 이 두 사람도 한 장소에서 함께 머물 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인 것 같다. 작가는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삶에 갇혀 홀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일까. 같은 공간에 자리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홀로 살아가는 듯 모든 인물들이 외로워 보인다. 나는 처음에 '을'이 남자고 '민주'가 여자인줄 알았다. 그렇게 읽어내려 가다가 '민주'가 남자인 것을 알고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담담하게 이어지는 등장인물들간의 관계를 파고들다 보니 이도 곧 잊고 말았다. 분명 작가는 내가 아는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낯선 세상에 온 듯 모든 것이 생소하다. 이 소설의 색깔은 짙은 회색빛으로 전혀 빛을 머금고 있지 않다. 주요 등장인물들만이 이 곳에 있는 것은 아닐진데 유독 이들 한 명, 한 명이 작가의 손에 의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난 이유는 무언인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모든 관계를 알게 되어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겠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터졌을 때만이 이들이 비로소 숨을 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이야기는 끝이 난 것 같지만 이들의 삶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삶이 소설속에서도 끝을 맺지 않는다. 이방의 땅이기에 다음엔 어디든지 갈 수 있겠지만 마음 한 자락은 언제나 지나온 곳에 놓아두게 되는 것이 삶이다. "정말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아무데나 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소설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동안 읽어 왔던 소설들과 다른, 낯선 느낌이 좋았다. 책을 덮고 난 후 마음에 담았던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