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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100만 달러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3월
평점 :
한 젊은이가 열정 하나만으로 맨손으로 거금 100만 달러를 손에 넣은 성공담이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우울하지 않았을텐데, 작가는 독자 가까이에서 아주 아주 친절하게도 '거금 100만 달러'의 글을 통해 렘의 불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티 프레일과 렘의 로맨스를 보여주어도 되었을텐데 이리도 철저하게 렘의 인생이 파괴된대는 운명이 아니라 분명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분명 작가일 것이다. 아니, 셰그포크 휘플이다. 순진한 렘에게 환상을 심어준 사람, 휘플로 인해 렘은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기 위해 세상 밖으로 떠났지 않은가.
버몬트 주 오츠빌 근처 랫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살았던 렘은 이 곳을 벗어나며 아주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돈'이 필요하여 돈을 벌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떠난 그는 시골 청년처럼 세상일에 너무도 무지했다. 꼭 서울역에 금방 도착한 시골 아가씨처럼 말이다. 번화한 서울역을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아가씨의 행동이 조마조마한 것은 어둠의 손길이 미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렘 또한 그가 가진 돈을 모두 사기꾼에게 빼앗기고 보석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채 교도소에 들어가기까지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렘이 성공한 삶을 살았을까? 당연히 독자라면 이것이 궁금할 것이다. 불행이 겹겹이 그를 덮치는 상황이 무서워서 나는 살짝 '거금 100만 달러'의 마지막 장을 넘겨보았다. 사람들이 렘의 이름을 외쳐 부르고 있었다. 아아, 그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도 마지막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해 버렸는데 아뿔사,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나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1930년대 암울했던 미국 사회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가의 손에 의해 렘은 철저하게 파괴된 삶을 살았다.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상황이 이러했을 것이라 실감나는 이유는 렘이 겪은 일이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또 다른 글 '발소 스넬의 몽상'은 트로이 목마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감이 약해 어떠한 잔인함도 허상이라 떨쳐버릴 수 있었지만 '거금 100만 달러'는 그렇지 않았다.
작가는 렘에게서 이를 뽑아내고, 눈을 빼앗고, 머리가죽까지 빼앗으며 그에게 어떤 삶을 살아내기 바랐던 것일까. 렘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간 지금 무엇이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이 열정만으로는 거금 100만 달러를 쥘 수 없을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기에 글의 제목을 '거금 100만 달러'라고 지은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그 때의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렘은 자신의 삶을 놓아 버리지 않았다. 늘 정의를 위해 살았다.
렘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울했던 기분이 '발소 스넬의 몽상'을 읽으며 치유되어 간다. 트로이 목마 안에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서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피카소, 세잔, 셰익스피어 등 수많은 예술가들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술가인양 뽑내고 하나 같이 글 쓰는 작가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작가는 글 속에 또 글을 넣어 독자들에게 늘 새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새뮤얼 퍼킨스의 전기 작가라고 말한 맥기니, 범죄일지를 나무에 숨겨 놓은 존 길슨 등 이들은 손 끝 하나를 뻗어도 아주 우아하게 내리 뻗어야 할 것처럼 예술가의 삶을 들려준다.
"거금 100만 달러" 책 소개를 보면 이 책을 웨스트만의 블랙유머와 환상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했지만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를 읽은 나는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이 블랙유머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거금 100만 달러' 글의 암울함 때문일 것이다. 결코 허허 웃으며 읽을 수가 없었으니까. 환상적 분위기는 '발소 스넬의 몽상'을 통해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힘들었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보면 그가 보여주는 작품세계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읽어본 그의 책이기에 아직은 어떻다, 라고 말을 꺼낼 수는 없지만 현실감이 풍부한 글이었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