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얼론 투게더'라는 제목은 뜻이 전혀 다른 단어의 조합이다. "함께"라는 "투게더"가 있지만 오히려 그 바탕에는 고독함이 짙게 묻어있는 것 같다. "얼론 투게더"의 주인공 야나세는 타인과 직접 소통하지만 이로 인해 마음속 깊숙히 들어있던 외로움을 밖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라는 인식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타인의 파장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아니 저주를 받고 태어난 그는 자의에 의해 상대방의 파장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하지 않지만 강력하게 발산되는 파장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 만다. 아니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무엇도 그를 저항하지 못하게 잡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분명 야나세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끈을 놓아버린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감추고 싶은 비밀을 한 가지쯤 가지고 살지만 야나세는 그들의 마음과 오롯이 마주한다. 피할 곳도 없이 두 사람만의 공간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 그 어떤 거짓도 허용되지 않는다. 야나세는 곧 나 자신이니까. 자살 미수로 입원한 환자를 죽인 가사이 교수는 야나세에게 이 환자의 딸 다치바나 사쿠라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한다. 다치바나 사쿠라의 엄마를 죽였으니 죄책감에 지켜달라고 하는 부탁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의 중심적인 내용으로 다치바나 사쿠라의 엄마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면 야나세의 곁으로 바짝 다가설 필요가 있다. 여기에 스릴러적인 요소가 들어 있을까? 아니, 야나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한 부분이기에 그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모두 이상하게 보인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료지, 대안학원을 운영하는 와타리 원장 등 야나세의 능력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이들과의 접촉이 잦아져 미스터리하게 보이는 것이다. 다치바나 사쿠라, 이름이 너무 길어 글의 중간에 계속 등장하는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고 있자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신적인 파장의 색깔이 비슷한 다치바나 사쿠라와 야나세는 서로의 가까이에 다가서기엔 모든 것이 위험해 보인다. "얼론 투게더"는 다치바나 사쿠라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야나세의 모습을 그리며 갈등의 요소를 해결하며 끝을 맺는데 정작 자신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그 여운을 남겨두지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그가 자신을 옭아매는 이 '저주'를 어떤 식으로 풀어가게 될까. 평범한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는 야나세에게 어떤 일들이 있게 될까.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지금도 괜찮은 삶인 것 같다. 조금은 평범하게 보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