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 꿈꾸는 달팽이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형과 함께 오르기로 했던 카타딘에 헨리는 친구 샌번과 검둥개, 그리고 형을 죽게 만든 차이와 함께 오른다. 카타딘을 오른다고 해서 불행이 비껴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 이곳에 오려고 했는지 그 해답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기에, 누군가가 올지도 모르기에 카타딘을 오른다. 

 

형 프랭클린의 사고로 헨리의 집안에 불행이 덮쳐온다. 프랭클린 형은 블리스베리에서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형을 죽게 한 차이는 캄보디아 이민자였기에 이 사고는 한 집안의 불행을 넘어서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고 만다. 프랭클린이 잠깐 깨어났을 때 외친 "카타딘", 이 말은 헨리에게 가족들을 지키라는 의미였을까. 이 곳에 모든 해답이 있다는 의미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카타딘에서 모든 사건이 끝이 나는 것을 보니, 단순히 헨리와 프랭클린이 함께 오를려고 했던 산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다. 루이자의 말처럼 헨리가 카타딘을 오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프랭클린이 그저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헨리는 이 카타딘을 오름으로서 세상의 불행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세상을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된다.  

 

프랭클린 형의 사고 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버지와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누나 루이자의 모습은 이 집 안에 드리운 불행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거기다 루이자의 과도한 흐느낌은 이 사고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카타딘으로 향한 헨리와 샌번, 그리고 검둥개가 차이를 만나 함께 동행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마지막 책장까지 넘긴 지금이야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에 헨리에게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형을 죽인 사람의 차를 탄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헨리는 안다. 차이에게 주먹을 휘둘러 흠씬 패 주어도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건 형의 죽음이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형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인종문제까지 날카롭게 파고든 "트러블"은 누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보다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인종문제가 한 가족의 불행과 맞물리면서 어떻게 서로가 화해를 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정치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프랭클린의 사고 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검둥개를 돌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프랭클린의 죽음으로 헨리의 아버지는 "프랭클린이 죽지 않았다면 훌륭한 어른으로 컸을까"를 자문하고, 아들의 죽음이 지역사회에서 큰 사건으로 발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제 헨리의 가족들은 불행을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집을 지었지만 불행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제 이 불행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헨리가 카타딘에 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불행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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