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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닥터 -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닥터 팽, 대체 너는 누구냐.
표지 그림에 있는 인물이 진정 닥터 팽이라면(김종수가 묘사한 그대로의 모습이므로 닥터 팽이 맞을 것이다) 김종수, 이 책의 화자인 '나'가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닥터 팽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닥터 팽은 흡사 애니메이션에서 금방 튀어나온 모습이라 모든 것이 김종수의 환각이라 단정짓게 된다. 어쩌면 나도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닥터 팽의 존재를 김종수의 머릿속에서만 볼 수 있는 존재로 단정짓고 모른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나 또한 이 닥터 팽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슬며시 짜증이 난다. 뒤죽박죽, 얽혀 있는 이야기들 중 어떤 것들이 진실일까, 생각하면 나의 머릿속까지 복잡해지는 것이다. 수연에 의해 그의 삶의 한 귀퉁이가, 아니 남아있는 삶이 모두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을 땐 어리석게도 착한 그를 괴롭히는 수연을 짜증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이것조차 명확하지 않은 기억속의 한 부분이라니. 이렇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명쾌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니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조차도 내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혹시 나도 닥터 팽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걸려든 것일까.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 방금 본 선명한 기억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 내가 본 것이 맞는지, 무엇을 보긴 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게 된다. 나의 기억력이 떨어져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가끔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본 것이 환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그 기억이 맞다며 누가 말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실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환각이라며 김종수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흡사하다고 말하진 않는다. 절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현실일테니까.
연탄광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그의 기억속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어떻게 연탄광에서 발견될 수 있었는지는 오로지 김종수, 본인만이 알고 있을 터, 그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환각이라 주장한다면 무엇으로 두 사람의 죽음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살인, 감금 등의 범죄를 저지른 김종수를 단죄하고 싶다면 기억의 존재부터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스스로 기억의 문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증거만으로 사건을 밝혀내고 그를 가둬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그가 주장하는 말들 중 그 중에 진실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 땐 우리가 맞다고 주장하며 믿어버린 것들이 오히려 환각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닥터 팽, 그래 닥터 팽이라면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닥터 팽은 모든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일테니까. 닥터 팽에게만은 모든 것을 보여주며 진실만을 말했을테니까. 하지만 이 닥터 팽은 또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사람들 안에 있는 닥터 팽의 모습은 모두 다를텐데 김종수가 말해주지 않는 한 그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닥터 팽은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책 속의 모든 것이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환각이 아닌 허상 말이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김종수, 그의 삶이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 '행복'이라는 것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삶에 애착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행복', 그래 행복한 기억 한 가지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삶을 꾸며내고 환각속에 빠져 살진 않았을 것이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절규할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환각속에 빠져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끼며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리라. 어차피 우리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