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가? 아니, 지금은 세상이 스즈키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스즈키, 그에게 현재 던져진 사명(?)이 있다면 데라하라를 죽인 '밀치기'의 가족을 지키는 일인데 이 일의 결말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지? 책을 읽는 동안 왜 죽어야 하는지 일일이 자세하게 대답해주는 자살 유도 킬러 구지라의 존재가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면 글쎄, 아직은 세상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이겠다. 물론,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하지만 구지라의 눈을 보면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죄책감이 살아나게 되면 당신과 나는 어느새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책장을 넘겨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가족 몰살 전문가 '세미', 자살 유도 킬러 '구지라', 밀치기 등 이들은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건 사고의 주역들이다. 이들이 모였을 때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스스로 죄책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자신이 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살아온 이들이 이번에는 스즈키를 가운데 두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책속의 등장인물 중 '정의'의 편에 서 있는 스즈키지만 그 또한 타인의 삶에 불행을 던져주는 일을 함으로서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스즈키가 '밀치기'의 가족을 지키는 일에 목숨까지 걸었으니 그가 아내의 복수를 위해 한 일들을 모두 눈 감아 주어야 할까. 모든 인물들이 실체가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구지라의 눈 앞에 나타나는 환영들이 이미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킬러들의 본성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죽이기는 하지만 킬러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함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당혹스러워 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들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는 진실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스즈키가 그렇게나 갖고 싶어했던 가족, 그가 지켜내고자 했던 밀치기의 가족조차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렸을 때의 허탈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밑바닥까지 치고 다시 올라오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구지라의 눈을 보면 왜 모두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아마 구지라도 늘 죽음을 생각했겠지만 스스로 파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끝까지 '밀치기'를 쫓으며 청산해야겠다고 한 일은 아마도 자기 자신 아니었을까. 밀치기와 한판 승부를 내겠거니 기대한 사람이 있다면 조금 서운하겠지만 서로가 죽고 죽이며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킬러들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으며 늘 이것을 꿈꿔왔을 것이다.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누군가의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