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유쾌함을 선사하지만 늘 감동도 전해주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책이다. 와타루의 성장소설인데, 어린시절부터 마을에서 이방인으로 자라온 와타루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엄마와 자신을 보호해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여야 했다. 어느 날 크로마뇽인의 모습을 본 후 자신과 유사한 모습에 아버지로 생각하게 된 와타루, 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만큼 와타루에겐 절실한 문제였을 것이다. 석기를 제작하고 사치의 아버지를 응징하겠다며 사치의 아버지에게 석기를 던지는 와타루의 모습은 정말 위험한데, 이후에도 꾸준히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들에게 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크로마뇽인이 살아남기 위해 매머드를 사냥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와타루의 삶에 투영되어 점점 그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는 러시아, 그에겐 이 곳에 가야할 이유가 있었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백백백백백백 뿐인 이 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는다. 아버지라 생각했던 크로마뇽인만이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뿐이라니 러시아까지 간 와타루의 어깨가 더 추워보인다. 와타루가 계속 자신이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할 때 왜 와타루의 엄마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지 의아했다. 점점 타인과 다르게 변해가는 와타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와타루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점점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된다. 사치만이 자신의 곁에 머물며 함께 하지만 자신의 뿌리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늘 와타루를 괴롭힌다.
 
크로마뇽인에 대해서 공부하는 와타루, 독자인 나로서는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이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 곤혹스러웠는데 꼭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듯 지루하여 책장을 넘기는 것이 솔직히 힘들었다. 늘 혼자였던 와타루에게 사치와 도라가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엄마와 구보 씨와의 관계를 받아들여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엄마가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와타루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엄마 나름대로 괜찮을 것이다, 라고 위로해 보지만 이 문제가 와타루의 마음속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정의가 이겨야 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데 와타루가 엄마와 쿠로를 괴롭히는 범인을 직접 잡았을 때 오히려 불량 청소년으로 찍혀 버려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왜? 와타루의 가족은 피해자인데 협박범이 오히려 합의를 해 줘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건지, 쿠로에게 독약을 먹인 범인을 왜 놓아줘야 하는지 속이 상할 정도였다. 몸은 다 자란 어른이지만 나도 마음은 아직 어린시절에 머물러 있는 걸까. '법'이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역시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다.
 
이 지구가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빙하기를 맞아 크로마뇽인처럼 생존을 위해 창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곳에서도 흐르는 눈물은 따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때는 와타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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