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밥 먹기 싫어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22
이민혜 글.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집 앞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면 엄마가 "밥 먹어라" 소리치시곤 하셨다. 아이들과 한참 신나게 놀고 있는데 그 땐 왜 그렇게 밥 먹으러 들어가기 싫었던지, 엄마를 방해꾼으로 생각했었다. 지금이야 그 소리가 아득한 먼 옛날의 일로 여겨지고 그립기도 한데 과자 같은 군것질을 하고 나면 밥 먹기가 힘들어 가끔 투정을 부리기도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아이가 그린 듯 투박해 보이는 그림, 어질러진 방안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얼마나 밥 먹으라는 소리가 싫었으면 엄마의 모습이 밥통로봇으로 보일까. 오늘은 기필코 밥을 먹지 않겠다 결심하고 야무지게 손수건으로 입을 막는다. 칙칙 김을 내뿜는 엄마의 모습, 어린 시절 내가 본 엄마의 모습과 똑같다. 그렇지만 몸통을 저리 커다랗게 그려놓다니, 너무 정확하게 표현한게 아닌가. 뽀글뽀글 파마한 머리, 몸빼 바지를 입고 지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책을 읽는 것이 유쾌하다.

 

밥 주걱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밥 먹어" 소리치는 엄마, 아이의 성장을 위해 늘 노심초사 아낌없는 사랑을 퍼붓는 엄마의 모습을 무섭게 그려놓았지만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얼마나 그리운 모습인지 말이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준다면 책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서가 될 것 같다. 아이의 몸이 커지고 붕붕 날아오르는 모습은 군것질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깨닫게 될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나는 왜이리 "밥 먹어" 소리치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일까. 봐도 봐도 또 그리워진다.

 

그림속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동등한 자격으로 싸운다. 현실에서야 엄마의 권위가 절대적이긴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명령에 반항하며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 아이의 세상에서는 엄마는 밥통로봇, 언제든 승리하면 전원을 꺼 버릴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아이에겐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잠시나마 자신이 원하는대로 해 볼 수 있는 꿈을 선사한다. 엄마와 아이의 밥 전쟁, 아마 엄마는 평생 아이에게 밥을 권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겠지. 엄마가 해 주시던 따뜻한 밥 한공기가 그리워질 때면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오르지 않을까. 아무리 힘든 시간이어도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상에 힘이 솟곤 하는 우리들이고 보면 "밥 먹어"라는 말이 꼭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된다. 그 때가 되면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 있을 터, 이젠 새로운 밥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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