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은충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나의 마음이 온통 '악'으로 가득찼을 때 수은충이라는 벌레가 꿈틀거리기 사작한다. 이렇게 스멀스멀, 혹여 나의 몸 어딘가에 이 벌레가 기어다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면 이미 마음 한구석에 '악'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얀 표지에 수은충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책이 공포소설 같이 느껴지지 않지만 각 단편들을 읽으며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악'과 마주하다 보면 한편으론 인간의 이기심에 헛웃음마저 흘러나오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도시전설 세피아'와 '새빨간 사랑'으로 이미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 분위기가 어떠할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각 단편들을 쉽게 읽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속까지 불편해지는 단편 [대울타리의 날]은 머릿속에 그 이미지가 떠올라 한동안 떨쳐버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인육을 먹다니, 겐토가 사람의 손톱을 뱉어냈을 때 내 얼굴은 온통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다. 꼭 내가 먹은 것 마냥 속이 불편했다.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집착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단편 [미열의 날]은 또 어떤가. 아이들이 피운 담배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사건을 몰아간 것은 아닌가. 두꺼비를 천에 싸서 높이 던져 올렸다 바닥으로 떨어뜨려 죽이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잔학한 모습이 한 생명을 처참하게 없애 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는 친구에게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작용했기에 아직 '도덕'에 대한 개념이 서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이 저지른 악행은 다른 단편들과 다르게 마음속에서 오래 머문다. 단편 [박빙의 날] 또한 현재 우리들의 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 하고 있어 가슴까지 서늘해진다. 이 단편에서 '료스케'는 누구인지, 어떤 존재이기에 미하루와 나오를 단죄하기 위해 왔는지 궁금해진다. 미지의 존재로 다가오는 이 '료스케'로 인해 자신이 가장 행복할 때 이전에 지은 죄를 생각하며 이 행복이 달아나 버리지 않을까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게 된다면 때론 사람들의 가슴이 후련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영혼에 침투하여 기어 다니다가 결국은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어버린다는 벌레 '수은충', 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이것을 간단히 부정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머리속이 복잡할 때면 깨어질 듯 아픈 증상이 혹시 이 수은충 때문은 아닐까. 이미 머릿속은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을지도 모른다. 목덜미가 스멀거리고 팔에 벌레가 있는 듯 느껴진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단편들이 많아 이 수은충의 존재가 더 무섭게 다가오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의 영혼을 죽을때까지 몸에 달고 살아야 하는 단편 [고엽의 날]은 공포소설의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글이기에 첫 장부터 제대로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 매혹적이지만 두려운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 수은충이 언젠가 당신을 덮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