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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척 팔라닉의 소설은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가 않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툭툭 내뱉는 글들을 보면서 오롯이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이트 클럽의 룰이 머릿속에 각인될 때쯤, 아니 타일러와 '나'와의 관계가 밝혀질즈음에서야 책에 완전하게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 옥상에서 타일러와 대치중인 '나', 책의 처음인 '나'가 자신을 죽이려는 타일러를 바라보는 장면은 독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하진 않지만 왜 이들이 이렇게 만나야 했는지, 말라라는 여자가 이유가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이 세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럼 그때부터 '파이트 클럽'의 룰대로 '파이트 클럽'에 대해 아무것도 발설하지 못한 채 이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온통 파괴적인 내용들 뿐이다. 그나마 말라와 '나'가 처음 만나는 장소가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 유독 가슴속에 머물긴 하지만 '나'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지 않아 이 또한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단조로운 삶에 찌들어 간 것일까. 흠씬 두들겨 맞고 난 뒤 이젠 두려운게 없어져 무모해진 것일까. 타일러와 함께 하는 '나'는 이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세상 밑바닥까지 추락해 보는 것, 이것이 파이트 클럽의 기본이겠지만 볼에 구멍이 뚫릴정도로 얻어맞고도 아무렇지 않은 '나'를 보며 웃음이 나오진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런 나는 '파이트 클럽'에 들어갈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겠지만 모두가 '나'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심리적인 상황을 적은 글이 대부분인 '파이트 클럽', 이것을 영화로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아직 책 밖에 읽지 못했지만 영화로 만난다면 그 파괴적인 느낌에 흥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척 팔라닉의 '질식'보다는 그 구성이 치밀한 '파이트 클럽', 타일러와 '나'와의 관계가 이 책에서 큰 반전이긴 하지만 이들에겐 목적이 있다. 살아내기 위해 밑바닥까지 떨어져 보는 것, 이것이 그들을 살아숨쉬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 '파이트 클럽'에 열광하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나'가 타일러를 찾게 되는 날, 세상은 더이상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말라를 살리기 위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순 없겠지만 자신이 추구해 온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나'가 어떻게 세상을 이겨내는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나의 삶이 아니기에, 타인인 그를 지켜보며 때론 나도 내 안에 숨겨진 파괴적인 충동을 느낀다. 이 충동을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까. '파이트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님을 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테니까. '나'는 이런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줄 것인가. 아직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나'를 보면서 그가 자신을 기억하는 세상에 나타났을 때 이제 그 어떤 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더 끔찍한 사건을 원하는가, 어떤 일을 바라는지 이것은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