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책 읽기를 멈추라고 했던 빅터의 음성이 귓가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오기가 있지, 보지 마라고 하면 더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말을 들을 것 같아? 아마 이것이 그가 의도한 일이겠지만 나는 마지막 책장까지 깔끔하게 머릿속에 집어 넣고야 말았다. 광적인 섹스중독자인 빅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 어느 부분에 나의 관심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당황스럽긴 하지만 식당에서 질식사 연기를 하며 돈을 모아야 하는 그가 애처로워서 감히 중간에 책을 덮어 버릴 수가 없었다.

 

세인트 앤서니 요양 센터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그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음식을 거부하는 어머니에게 급식 튜브를 살 돈도 없는 처지다. 돈이 있어도 그는 급식 튜브를 살 것인가? 이것을 놓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출생에 대해 한마디씩 던지는 어머니를 그냥 떠나보내지 않으려면 그가 무언가 하긴 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담당의사 페이지를 통해 빅터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면 나는 아직 그에게 아름다운 로맨스가 남아 있음을 믿고 있었다 할 수 있겠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조금은 순수했던 그가 세상으로부터 한 방 멋지게 제대로 당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유쾌하게 웃어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서 어찌 바라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다.  

 

빅터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 책은 한순간에 섹스중독자 빅터가 아닌 위대한 한 사람의 영웅으로 그를 탈바꿈 시키게 되나 보다 했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에게 이제 더 나빠질 것이 무엇이 있나 싶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또 오기 마련이라, 그의 인생이 어디까지 흘러가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의 마지막장까지 넘길 수 밖에 없으리라. 그의 곁에 있는 데니는 대체 돌을 왜 모으는 것인지, 무언가 건설한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 수양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은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혼동하고 툭툭 던지는 주인공의 대사에 적응하지 못해 읽어내는 것이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질식'에서는 작가의 이 엉뚱한 이야기에 녹아드는 것을 보니 하하하, 꽤 유쾌하게 웃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베스, 데니, 페이지 등 빅터의 곁에 있는 인물들 어느 하나 정상적인 사람들이 안보이니 웃다가 돌이라도 맞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냥 뚝, 웃음을 그치련다.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이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힘든 일이라, 어린 시절의 빅터의 모습과 지금 빅터의 모습이 교차하며 내 마음속은 점점 더 말을 잃어간다. 몇 장 읽어내지도 못하고 멈추게 될 것이라는 그의 경고에도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것은 아마도 처음엔 '호기심'때문이었겠지. 그 다음엔 정상적이지 않은 어머니 밑에서 그가 겪은 일에 대해 궁금해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요양 병원에서 돌보는 빅터를 보면서 그가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 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가 처한 모든 삶이 눈 앞에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밑바닥까지 다 드러나는 것이다. 왜? 독자들아, 이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바닥까지 드러내는 거북한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은 나라고 빅터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삶이 다 그런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