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가 돌아왔다. 아니 그는 항상 미국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중이었을 것이나 나는 '추적자' 이후 그를 너무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잘 아는 사이라도 되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 책에 간략하게 소개해 놓은 줄거리를 보면서 홀리를 납치하려던 괴한들이 뜻하지 않게 함께 있는 리처까지 납치하게 되었다는 글을 보면서 나는 이 괴한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리처를 납치하다니 복도 없지. 리처는 분명 홀리와 함께 이 괴한들의 손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 믿는다. 다만 잘 걷지 못하는 홀리로 인해 리처가 몇 번의 탈출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녀의 곁에 머무는 것을 보면서 그가 생각하는 '정의'와 리처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한 괴한들을 함께 지켜보며 위험에 노출된 홀리와 리처의 안전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녀와의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흠, 조금은 긴장감을 느끼라고? 물론 천혜의 요새속에 감금된 리처와 홀리를 보면서 이곳을 대체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 긴박함을 느끼게 되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마시라. 책의 중반을 넘어서고부터는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테니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눈 앞에 영상까지 펼쳐질 것이다. 대체적으로 미국영화를 보면 "정치적인 문제는 늘 사람의 인명보다 앞선 대의명분을 가진다"는 내용을 가진 영화가 많은데 그래서 홀리의 안전은 물론 리처의 안전까지 보장받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녀를 구출해 내야한다는 그녀의 아버지 존슨 장군과 그녀와 함께 팀을 이루어 일을 한 맥그래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홀리를 구출할 작전을 세운다. 리처는 군대에서 복무할 당시 공을 많이 세워 수많은 훈장을 탔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장소에서 홀리를 도와준 상황이 도리어 그를 괴한들의 우두머리로 오해하게 만들어 '탈주자'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서로가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나의 편인지, 적인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 것인지.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을까 차츰 불안해진다. 존슨 장군과 웹스터의 지휘 아래 시작된 작전의 모든 정보가 적에게 노출된다. 누가 첩자인가. 왜 적들은 홀리를 납치했을까. 홀리의 신분이 적들에게 유리한 협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한 여자의 납치를 통해 적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을 때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존슨 장군을 비롯한 웹스터, 맥그래스도 왜 홀리를 납치했는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한데 여기에 대한 답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풀어지게 된다. 한 인간의 욕망이 부른 사건인가, 아님 한 인간의 삐뚤어진 정신세계가 화를 부른 것인가. 나의 머릿속까지 혼란스럽다. 분명한 것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리처를 적으로 돌려놓는 짓은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무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책을 읽는동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는데 반전에 반전, 또 반전을 거듭하는 '탈주자'를 읽으면서 마지막 책장까지 안심할 수 없는 긴장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공포심마저 느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압박에도 오히려 책장이 줄어드는 아쉬움을 느껴야 할 정도로 읽는동안 내내 즐거웠다. 홀리와 리처가 납치된 곳과 홀리를 구해내기 위해 꾸려진 팀 모두를 볼 수 있는 입장에 있는 독자로서는 잠깐의 틈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지 않을까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을 느꼈지만 꼭 그들이 함께 작전을 행하는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마음까지 통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작가의 필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까지 제시하는 작가를 보면서 나는 벌써 다음 시리즈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또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리처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에 가만히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싶은데 그의 키가 너무 큰 관계로 어깨에 손조차 닿지 않아 악수 정도는 허락해 줄지도 모르겠다. 리처, 이제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나는 벌써부터 궁금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