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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섬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이야 아무리 무인도라고 해도 누군가 살고 있을 법하지만 프렌딕이 남태평양에서 난파선에서 탈출하여 구조되어 보게 된 한 섬에서의 끔찍한 실험은 그때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배가 난파되고 11개월이나 지나서 돌아온 프렌딕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겠지만 환각속에서 겪은 일로 생각하기엔 그 묘사가 너무 자세하여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모로 박사의 섬'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섬은 그 이름에서 풍겨오는 분위기에서도 왠지 모를 오싹함을 느끼게 되는데 실제로 온갖 생체실험이 난무한 곳으로 아주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 오는 무서운 곳이다.
프렌딕에겐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난파선에서 몽고메리에 의해 구출되어서 모로 박사의 섬에서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내쳐졌을 때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는가. 이로써 몽고메리는 프렌딕의 목숨을 두 번 구해주게 되지만 프렌딕을 지옥의 섬으로 끌어들였으니 자신이 삶이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프렌딕에게 정말 그 운명은 가혹하기만 했다. 물론 몽고메리로서는 이 섬으로 끌어들일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 귓가에도 퓨마의 괴성이 들리는 것 같다. 이 섬을 떠도는 익숙한 소독제의 냄새를 맡으며 프렌딕은 퓨마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어 들리는 신음소리가 사람의 소리라는 것을 깨닫자마다 모로 박사의 실험실의 문을 벌컥 열고야 만다. 고통을 소리로 표현되어 내 귓가에 들려왔을 때만이 그 고통의 실체를 알아볼 수 있어 살아있는 채로 실험을 당하는 동물들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에 프렌딕은 도저히 제정신을 가지고 듣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단지 책속의 글로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볼 뿐인데 꼭 나의 살을 찢는 듯 아프고 손안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미 '모로 박사의 섬' 안에 들어가 있는 듯 몰입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로 박사는 자신을 '신'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물들을 인간화 하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새로운 종을 만든다는 생각은 이 섬의 통치자로, 자신을 영적인 존재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꼭 프렌딕의 눈으로 모로 박사의 종말을 볼 수 있도록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고 모로 박사는 자신의 죗값을 받아 끔찍하게 죽어갔을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경시한 그가 행한 모든 실험은 단죄받아 마땅하다.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를 해 놨던지 이 책이 출간되자 영국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동물 생체실험을 반대하는 조직까지 생겼다고 하니 호기심에 덥석 이 책을 펼치는 잘못을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이 이 책장을 펼치는 순간 '모로 박사의 섬'으로 초대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이 섬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