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수도원의 비망록'은 수도원의 부패를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도,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프라에 수도원을 하나 세워준다면 마리아 아나 왕비가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하는 안토니우 수사의 말에 주앙 5세는 수도원 설립을 약속하게 되고 당연하게도 마리아 아나 왕비가 아이를 가지면서 '수도원의 비망록'의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의 화자는 독자들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등장인물들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길 좋아해서 마리아 아나 왕비는 이미 아이를 가지고 있었고 프란시스쿠 수도회와 어떤 종류의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계속 읽어보면 알겠지만 간략하게나마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줌으로써 꼭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듯 한껏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단락구분은 있지만 인물들간의 대화조차 긴 문장으로 늘어놓아 읽는것이 상당히 곤혹스러운데 마음속으로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서 읽다보면 누가 지금 이 말을 했는지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마프라에 세워지는 수도원의 이야기는 결국엔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작되는 사건일 뿐인데 전쟁에서 왼손을 잃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는 마녀 재판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마프라의 수도원 설립과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어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아주 힘들게 책장을 넘기며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마프라의 수도원 이야기는 덧붙여진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바르톨로메우 신부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든다. 마녀 재판이 성행하던 시기에 하늘을 나는 기계라니 아무리 왕이 후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결말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 블리문다와 인연이 있는 바르톨로메우 신부가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도움으로 하늘을 나는 기계(파사롤라)를 만드는 것이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늘을 날아간다니, 참 매력적이긴 하다. 사람들의 의지를 구체에 담아 태양 가까이 날아간다는 설정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황당하긴 하지만 음식을 먹지 않은 블리문다가 사람들의 영혼을 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는 일이니 책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것이 좋겠다.

 

바르톨로메우 신부가 사라지고 파사롤라를 관리하게 된 발타자르와 블리문다가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욕망을 자제할 수 있을지, 가 이 책에서 유일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목일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으로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사랑이 영원히 서로를 묶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이야기만 엮어갔다면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화자로 인해 비록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영원한 사랑의 실체를 볼 수 있어 다행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