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몸 -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평점 :
김종일의 '손톱'을 읽고 한동안 밤에 활동하는 것이 힘들었었다. 책 표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공포심에 대한 저항력이 극도로 떨어졌기에 '몸'을 읽기 전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첫 장을 펼쳐야 했다. 단편 [눈], [입], [얼굴], [귀]를 읽으면서 그동안 왜 그렇게 겁을 냈었는지 모르겠다며 자신감있게 책장을 넘기던 내가 단편 [머리카락]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머리털이 곤두서기 시작하고 섬뜩한 느낌에 일단 읽던 것을 중단하고 낮에 읽자 결심할 정도로 무서웠다. '그래, 낮에 읽으면 괜찮을거야'.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다. 낮에 읽어도 밤에 잠자기 전 내용이 떠올라서 그렇지 이것만 빼고는 다 괜찮았다.
그동안 '몸'이라는 큰 틀속에 갇혀 지내던 손, 눈, 입, 얼굴, 머리카락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아, 물론 나를 기억해 달라는 작은 이유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는 학교 폭력, 외모 지상주의, 컴퓨터 다운로드 증독증 등을 각 신체와 연관지어 에피소드로 엮어 이유있는 반란을 도모한다.
한 사내가 영화감독 양정모에게 서류 봉투를 전해주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되는데 이 서류 봉투 안에는 김종일 장편소설 '몸'이 들어 있다. 여기에 실려있는 각 단편들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저자의 의도대로 영화감독 양정모에게 전달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게 되었고 급기야 나도 양정모처럼 이 책속의 등장인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듣지 말아야 할 것들이 들리지는 않는지, 학교 폭력에 희생된 아이의 눈이 빠지는 사건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어느새 책속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저자가 책속에 등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가상세계에서 일어날 법했던 사건들이 현실속에서 점점 실체감을 드러낸다는 것인데 공포감은 물론 긴장감까지 고조되어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 끔찍한 것은 내가 겪고 있는 이상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원고속의 여백을 채워가는 것을 바라볼 때 죽는 것만이 소설속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죽는 것도 자유의지로 가능한걸까. '몸'이라는 장편소설을 읽음으로써 나의 몸이 김종일의 소설이 된다면 그 때부터 나의 생명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악몽이라 생각하고 싶겠지만 책 속에 갇혀버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는 것이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김종일의 소설속 등장인물이 된다고 경고되어 있다면 당신은 이 책의 첫장을 펼칠 것인가, 멀리 던져버릴 것인가. 읽어보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을까 평생을 궁금해하며 살게 될테지만, 모든 자유의지를 구속당한채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리라. 자, 당신 앞에 김종일의 장편소설 '몸'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