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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 - 적도를 따라 펼쳐지는 낭만과 모험의 기록
마크 트웨인 지음, 남문희 옮김 / 시공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보통 물질적으로 풍부해야만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틀린 말이다. 가까운 곳 어디라도 지금의 갑갑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발길 닿는대로 가보는 것이 좋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닷가가 지척이라 창문을 열면 늘 바다를 볼 수 있는데 처음 이곳에 왔을땐 건물 하나 보이지 않고 파도소리만 들려와 황량해서 가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바닷가가 고즈넉해서 자주 찾곤 한다. 이처럼 내가 늘 보는 곳이라도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으니 굳이 세계일주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속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떠난 세계는 19세기로 빌딩숲이 빽빽한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위험에 대해서는 폭탄테러가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현재의 상황도 딱히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니 제쳐두고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웅장한 건물들을 볼 수 없다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19세기 세계일주는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계절마다 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라 몇 백년의 차이가 있는 세상을 마크 트웨인이 아무리 잘 설명한다해도 오롯이 공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저자가 파리에서 출발해 증기선을 타고 적도여행을 떠나 하와이, 오스트레일리아, 피지, 뉴질랜드, 스리랑카, 인도, 남아프리카까지 12개월 동안 본 세상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세계 최고의 작가'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마크 트웨인이 출판사 운영의 어려움으로 떠안은 부채를 탕감하고자 이 여행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이 책 어디에서든 그런 우울한 감정을 느낄 수 없이 유머와 입담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놓는다. 책 표지의 색깔이 회색빛이어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머릿속에서 회색빛으로 그려지는데, 복고풍이 유행한다 어쩐다 해서 칼라 사진보다는 흑백사진이 더 정감있게 다가와서 그런지 오히려 화려하지 않은 그의 여행이야기가 좋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되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 물론 빡빡한 여행 일정속에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없어 상대적으로 여유를 느낄 수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유일하게 여행했던 나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참으로 유쾌했다. 역시 '상어'이야기는 빼 놓을 수 없는데 물에 빠진채 누가 빨리 배에 오르는지 내기를 하는 젊은 사람들의 무모한 모험이야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나 아름다운 항구 시드니 항의 그 시절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은 과거 여행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어 행복해진다. 원주민이라는 단어가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문명화로 인해 변질되어 가는 원주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이 책에서 유일하게 세월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짧게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인해 조금 산만하다 느끼지만 그의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나는 마크 트웨인이 여행한 이곳에 갈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같은 곳을 가게 되더라도 그가 보여준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기록에 남겨진 19세기 세상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는 이 책은 개인의 여행이야기가 아닌 세계의 역사를 보여주었기에 더 큰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