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너무 혼란스럽고 몰입이 되지 않았다. 아마 오스카, 롤라,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벨리까지 이 가족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 일인 듯 생소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쓴 화자가 롤라와 한 때 사랑했던 유니오르란 것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들의 아픔에 내 마음까지 젖어들었다. 나는 그때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던 오스카가 왜 자신의 가족사에 대해 직접 쓰지 않았는지 의아했는데 그의 삶 마지막까지 함께 하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책 제목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보면 이미 저자가 오스카의 삶이 어찌 될지 미리 알려주는 셈인데 오스카의 삶이 파란만장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한번도 여자와 관계를 해 보지 않은 오스카가 늘 금방 만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오로지 육체적인 관계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며 솔직히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왜 이 책은 이렇게 시종일관 남녀간의 육체관계에 대해 서술해 놓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스카가 무수히 사랑했던 많은 여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그의 사랑을 어린시절부터 설명해 놓지 않았다면 그가 목숨까지 걸면서 사랑한 이본을 만난 일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어떤 저주(미신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여기선 '푸쿠'라고 표현한다)가 걸려있었든 그는 목숨을 걸어 이본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켰다. 오스카가 죽으면서 이본의 옛애인 카피탄을 저주하며 죽어갔다면 그도 이 '푸쿠'에 걸렸으리라. 하지만 오스카는 분명 세상을 떠나기전 그가 사랑한 여인 이본을 생각하고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들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넘겼을때의 가슴 먹먹함이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벨리의 아버지 아벨라르는 저명한 외과의사였다. 어머니 소코로는 간호사였는데 이들 가족은 명망있는 부유한 가문이었다. 독재자 트루히요의 집권 시절, 딸 재클린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걸어간 아벨라르, 가족들에게 미쳤던 악몽과 같은 일들이 벨리의 삶에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어 그 끔찍함에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벨리를 맡아 키웠던 라 잉카가 누누히 강조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 벨리를 꼭 의사로 만들고 싶었던 라 잉카의 마음을 벨리의 부모님의 삶을 보며 벨리를 향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벨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를 내세워 남자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에 다가온 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불행한 삶을 살아가지만 끝까지 당당했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암에 걸렸던 벨리가 오스카와 롤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알게 되면 그녀의 거친 성격에도 그 마음에 담긴 애틋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 트루히요의 정권 아래 비밀경찰로 활동한 '얼굴없는 사내'는 벨리의 아버지 아벨라르와 벨리 그리고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폭행을 일삼아 비록 트루히요가 죽고 없지만 이 곳이 얼마나 무법천지이며 '사랑'하나 지켜내기에도 힘든,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곳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얼굴없는 사내'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행복으로 끝맺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짓밟았던 무수히 많은 이들이 '푸쿠'를 걸어 아주 비참한 죽음을 맞아도 되리라. 사탕수수밭에 끌려가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 오스카를 떠올리며 총각으로 죽지 않음에, 사랑하는 여인 이본을 만나 그의 삶이 빛났음에 감사한다.